‘할머니’란 이름에 가려진 노년 여성의 사랑과 열정, 영화 ‘첫여름’ [리뷰]

손미정 2025. 7. 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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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허진 분)은 답답하다.

허가영 감독은 "노년기라는 생애주기의 특수성은 분명 있지만, 노인 역시 청년과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한다"면서 "이 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영순이 아닌 한 여자로서 영순과 동행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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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6일 메가박스 개봉 ‘첫 여름’
칸 ‘라 시네프’ 韓 영화 최초 수상
춤·사랑…영순의 찬란한 순간의 서사
‘첫여름’ 포스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영순(허진 분)은 답답하다. 전화를 받지 않는 남자 친구 학수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 손녀의 결혼식이지만 머릿속은 온통 남자 친구의 생각뿐이다. 그리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영순은 학수가 세상을 떠났고, 내일이 사십구재(四十九齋)란 연락을 받는다. ‘처량한’ 인생을 살아온 자신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주었던 학수. “난 저승 친구가 더 많아”. 영순은 익숙한 듯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영순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손녀의 결혼식에 갈 것인가, 아니면 학수의 사십구재에 갈 것인가.

영화 ‘첫여름’이 내달 6일 메가박스를 통해 관객들을 찾는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1기 허가영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다.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1등 상을 수상했다. 지난 3일 개막한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 상영이 된 바 있다.

영화는 노년의 ‘영순’의 시선을 조용히 따라간다. 자식을 모두 키워 내보냈더니 늙어서는 거동이 힘든 남편을 보살펴야 하는 삶.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평생 이고 살아온 영순은 춤을 출 때만큼은 오롯이 여자로 피어난다. 콜라텍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춤추고, 그렇게 사랑한 학수는 그런 여자로서의 영순을 깨워준 사람이었다. 학수를 향한 영순의 애정은 ‘불륜’이란 관계의 이름을 잊게 만든다. 담담하게 적어낸 영순의 이야기는 ‘할머니’란 수식어에 가려져 버린 ‘여자’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다.

허가영 감독은 “노년기라는 생애주기의 특수성은 분명 있지만, 노인 역시 청년과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한다”면서 “이 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영순이 아닌 한 여자로서 영순과 동행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허진 배우의 연기는 노년이라는 설정과 사랑, 그리움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나는 어떤 여자일까?”. 학수 앞에서 수줍게 떨리는 목소리, 그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은 한 여자가 품은 순수한 설렘을 화면 밖까지 전한다. 학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떼어내 영화 전반에 흐르는 노래 ‘못잊어’에 실어 보내는 섬세한 연기도 돋보인다. 골격이 드러나는, 얇은 티셔츠를 입은 특유의 분위기까지도 ‘할머니’이자 ‘여자’인 영순의 서사를 납득시킨다.

허 감독은 “우연히 젊은 시절 허진 선생님의 영상을 봤고,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됐다”면서 “영화의 첫 장면에 영순이 입은 얇은 티셔츠는 선생님께서 첫 미팅 때 입으셨던 의상이다. 단박에 영순처럼 보였고, 첫 리딩 후 확신의 환호를 했다”고 말했다.

어두운 집은 마치 할머니란 이름으로 영순을 가둔 세상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영순은 자신의 욕망과 솔직하게 마주하며, 인생의 반짝이는 순간을 맞는다. 나비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화려한 콜라텍 미러볼 아래에서 춤추는 영순은 과거의 어떤 순간보다 찬란하고, 그를 스쳐 간 사랑도 청춘의 그것만큼이나 뜨겁다.

허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첫여름’으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에게 ‘영순’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치는 여자였다. ‘영순’의 찬란한 시절과 충만하고 쨍한 여름을, 영화를 통해서라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첫 시놉시스를 쓰자마자 ‘첫여름’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30분이란 러닝타임이 뜨겁고, 짙게 지나간다. 8월 6일 메가박스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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