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그냥 쉬어가세요”…포항 석병2리 나눔쉼터 성철수씨 '화제'

서의수 기자 2025. 7. 31. 15: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수기·라면·침구까지 무상 제공…“고마운 마음 한 점이면 충분”
여행자 위한 무료 쉼터 지킴이로 42년 공직 은퇴 '제2의 인생'
포항 구룡포읍 석병2리 나눔쉼터 성철수 씨.

포항의 해안마을 구룡포읍 석병2리에서 특별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성철수 씨(72)의 이야기가 화제다.

42년간 해양수산부에서 기술직 공무원으로 선박을 돌보던 그는 은퇴 후, 이제는 걷는 이들을 위해 물 한 잔, 커피 한 잔을 내어주는 '나눔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내려와 청소하고 물 채워놓고 기다려요. 누가 오든 안 오든, 내게는 이 시간이 보람이니까요"라고 성 씨는 말했다.

△어머니 곁에서, 마을로 돌아오다
성 씨는 정년을 앞두고 고향 석병2리에 정착했다. 공로연수 기간 중 88세였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미리 귀향한 그는 "돌보는 삶이 곧 보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머니를 8년 동안 모시고 96세에 떠나보냈다"며, "그게 이 마을에 뿌리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덧붙였다.

석병2리는 마을명처럼 '돌이 바다처럼 펼쳐진' 독특한 지형을 가졌다. 성 씨는 "돌이 병풍(屛風)처럼 퍼져 있어 '석병'이라 불리는데, 해안도 암초고, 집들도 층층이 자리 잡고 있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마을을 소개했다.

△무료 개방, 커피도 라면도 '그냥 두고 갑니다'
나눔 쉼터는 본래 어촌계 회의실로 쓰이던 낡은 건물을 성 씨가 사비를 들여 리모델링하며 시작됐다. 건물 사용 허가는 어촌계장의 협조를 얻어 정식으로 받았고, 약 700만 원을 들여 전면 수리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나가는 이들이 머무를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내 퇴직금에서 10분의 1만 떼어도 충분하겠단 생각이 들었죠"라고 성 씨는 쉼터 설립 동기를 설명했다.

쉼터에는 정수기, 커피포트, 라면, 우의, 간단한 구호물자, 그리고 잠을 잘 수 있는 침구까지 갖춰져 있다. 특히 기초수급자, 장애인, 자녀 동반 가족, 75세 이상 노인 가족은 숙박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성 씨는 "필요한 사람이 이용해야 가치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2024년 8월 30일 석병2리 나눔쉼터가 개관.

△"정신나간놈이 돈 들여 만든다더라"
처음에는 마을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 "개인 영리 목적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성 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누가 매달 20~30만 원씩 들여 남을 위해 이런 걸 하겠어요?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난 이게 좋아요. 남들이 몰라주는 행복, 그게 내 삶의 중심이 됐어요"라고 그는 소신을 밝혔다.

청소, 정비, 운영, 보수까지 모두 혼자서 하고 있는 성 씨는 "작은 규모라 아침에 와서 정리하고, 오후에 와서 상태만 봐요. 샤워시설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죠"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사람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부모님을 모시고 들렀던 어느 딸이다. "하룻밤 자고 가려다 이틀을 머물고, 감사 편지를 남기고 갔어요. 그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죠"라고 성 씨는 회상했다.

후원도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만 원씩 놓고 가는 분들 많아요. 직접 연락 오는 경우도 많고, 주말엔 꼭 인사를 건네다 가요"라고 그는 말했다. 최근에는 전국 해파랑길 팀 58명이 쉼터를 방문해,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가장 큰 보람은 그거예요.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해줄 때. 그 한마디가 한 달 피로를 다 날려줘요"라고 성 씨는 미소 지었다.
 
석병2리 나눔쉼터 옆 성혈바위.

△포항의 모델이 되길
성 씨는 이 나눔 쉼터가 포항의 상징적인 사례가 되길 바란다. "시에서 '여기 좋은 모델이네' 싶으면, 다른 곳에도 하나 만들어보자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럼 내가 가진 노하우로 얼마든지 돕겠습니다"라고 그는 제안했다.

공공기관이나 민간의 지원에 대해선 조심스러우면서도 현실적인 바람을 전했다. "전기세만이라도 지원된다면, 그 돈으로 다시 물품을 보충할 수 있죠. 샤워시설만 있어도 훨씬 편해질 거고요"라고 말했다.

한편 시를 쓰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철수 씨는 해파랑길을 걷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후원금보다 '고마운 마음 한 점'을 받고 싶어요. 지나가는 길손들이 이곳에서 작은 쉼표 하나 찍고 간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합니다."

42년간 선박을 지키던 그의 손길은 이제 지친 여행자들의 쉼터를 지키고 있다. 포항 구룡포읍 석병2리의 작은 나눔 쉼터는 성 씨의 따뜻한 마음처럼, 오늘도 모든 길손에게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