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바다’…부산에서 꿈을 그리는 작가들

김진철 기자 2025. 7. 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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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독학 <2>창작의 물결




만화가의 꿈을 이루려면 서울로 가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지역 곳곳에서 자기만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가 많다.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 부산이 있다. 2018년 문을 연 글로벌웹툰센터를 시작으로 전문 교육과 제작 지원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됐다.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 같은 창작자 중심 행사와 공모전도 계속되고, 최근엔 국내 처음으로 ‘만화’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공도서관도 생겼다. 부산은 웹툰 산업의 중심지로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자리 잡아간다.

부산은 웹툰 작가에게 새로운 창작 터전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색깔과 결을 지닌 작가가 부산에서 본인만의 길을 그린다. 이들 중 액션·로맨스·스릴러 등 서로 다른 장르를 품은 세 작가를 만났다.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석재 웹툰작가가 자신의 작품 스타일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철PD


▮인생을 바꾼 한 권의 만화

“출판 만화 시절엔 외면받던 그림체였는데 웹툰 시장에선 그런 그림체가 드물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차별화된 강점이 됐죠.”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이석재 작가는 서울에서 출판 만화 문하생으로 지우개질부터 배우며 만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처음 ‘그려야겠다’고 느낀 만화는 <북두의 권>이다. 묵직한 펀치, 흐르는 근육, 그리고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육체. 어린 시절 그의 눈에 비친 액션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감정과 리듬이 겹겹이 얽힌,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작가의 그림체는 한눈에 봐도 강렬하다.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선과 무게감 있는 채색, 타격감이 느껴지는 연출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는 이 스타일이 처음부터 본인의 강점이 된 건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출판 만화 시절에 이 작가의 그림체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그는 “출판 만화 시절에는 내 그림체가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과 달라서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하지만 웹툰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다양한 그림체가 공존하면서 오히려 내 하드코어한 스타일이 차별화된 강점으로 자리 잡았다”고 소개했다.

이 작가는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서 <한림체육관>을 연재 중이다. 그는 <한림체육관>이 곧 막을 내릴 예정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릴 테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또 “예전에는 글과 그림을 모두 직접 했다”며 “<한림체육관>을 시작하기 전부터 준비해 온 작품이 있는데, 언젠가 독자들에게 꼭 공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부산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서울은 작업하기에 조금 빡빡한 느낌이 있다”며 “부산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바다와 산,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분위기도 그가 부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부산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이곳은 내게 창작에 필요한 안정감을 주는 도시”라고 미소 지었다.

오수민 웹툰 작가가 부산글로벌웹툰센터에서 작업하고 있다. 박혜원PD


▮로맨스를 그리는 ‘그’의 방식

“독자들에게 ‘로맨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오수민(필명 수민) 웹툰 작가는 로맨스 장르를 다룬다. 2015년 단편 공모전 출품작이 다음 웹툰(현 카카오 웹툰)에 연재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작화는 아마추어지만 감정은 전해졌다’ 독자 댓글을 보고 흥미를 느껴 “이제는 웹툰 작가 외 다른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 작가의 데뷔작 <심야카페>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언제나 순탄했던 건 아니다. 낮엔 박스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엔 웹툰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로맨스 장르 특성상 여성 독자의 공감을 얻어야 해 감정 표현을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했다. 당시 연인이던 지금의 아내에게 수없이 질문하며 감정선 하나하나를 다듬었다.

해외 플랫폼에 연재될 땐 <심야카페>가 다루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일부 민감한 표현을 조정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오 작가는 “연재하는 국가나 플랫폼마다 검열 기준이 달라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업계 전반의 구조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은 아무래도 상업적 성격이 강하다 보니 인디 성향 작가가 선택받기 어렵다”며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그리는데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가가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작가들이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플랫폼이 많아지고 여러 스타일의 작품을 담아내는 구조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현정 웹툰 작가가 부산글로벌웹툰센터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진철PD


▮‘재능’과 ‘꿈’을 주제로 한 스릴러

“10년 뒤 저는 제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낸 작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현정(필명 나주) 작가는 15세에 만화 작가의 길에 발을 들였다. 우연히 만난 만화가의 도움으로 화실에서 2년간 꾸준히 일하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워낙 만화를 좋아했던 이 작가는 “만화 <데스노트>를 매일 2페이지씩 ‘책 떼기’로 그리는 것이 숙제였다”며 “집은 해운대였고 화실은 중앙동에 있어 거리가 멀었지만, 가는 시간이 늘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갈등과 딜레마를 넣는 것. 이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할 때 끼우는 필수 요소다. 사건을 생각할 때 주인공을 어떻게 ‘궁지에 넣을지’ 먼저 고민한다. 그는 “(주인공을) 어떻게 괴롭힐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자꾸 딜레마에 빠뜨리려고 하고, 갈등을 넣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작가는 ‘직업인 특강’을 하며 웹툰 작가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끈기’를 앞세운다. 파도를 기회에 비유하기도 했다. “파도가 왔을 때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다 안에 있어야 탈 수 있다”며 바다 안에 있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재능과 꿈에 관심이 많았다. ‘재능에 대한 통상적 관념을 깨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린 작품 <애매한 재능>으로 부산판타스틱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재능과 협력을 다룬 드라마 성장물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제작지원 : BNK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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