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는 집은 왜 없을까?’…울산 ‘정토마을 자재병원’이 특별한 이유

윤성철 2025. 7. 3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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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불교 호스피스병원... 능행 이사장 "말기환자 죽음의 문 앞에서 따뜻한 손 잡아줘야죠"
(재)정토마을 능행 이사장. [사진=코메디닷컴]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 울산 울주군 언양 영남알프스 산자락에 은은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치 절이나 암자인 듯…. 하지만 여긴 '정토마을 자재병원'. 한국 최초의 불교 호스피스 병원이다. 그 시작은 한 스님의 예사롭지 않은 선택에서 시작됐다.

"삶과 죽음이 한 고리인데…죽음을 맞는 집은 왜 없을까?"

1990년대 말, 충북 청원시 미원면 구녀산 자락. 능행(能行) 스님은 그곳에서 불교 수행자이자 '돌봄자'로 살고 있었다.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말기 암 환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더 이상은 가족에도, 병원에도 기댈 곳이 없던 이들.

스님은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불교의 자비란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움직였다. 2000년, 스님은 거기에 '정토(淨土)마을 호스피스센터'라는 조립식 병동을 세웠다.

'청정한 마음,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 공동체'를 내걸었지만, 막상 현실은 조악했다. 전기장판 하나에 병상 15개. 게다가 옆방의 신음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오는 좁은 공간.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이들을 돌봤다. 그래도 환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갈 때마다 스님은 마지막 길을 함께 배웅했다. 간호사도, 자원봉사자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도망치듯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저도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나까지 떠나면 그 사람들은 누가 지키죠?" 그렇게 스님의 손길은 계속됐다. 오히려 더 간절해졌다.

오랜 시간 목탁 치며 기도했건만, 첫날 들어온 시주는…

2003년, 스님은 천일기도와 함께 병원 건립 모금을 시작했다.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오랫동안 목탁을 치며 기도했지만, 모금 첫날 들어온 돈은 단 50원뿐이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2007년, 마하보디임상교육원을 세워 영적인 돌봄인력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환자의 고통을 신체만이 아닌 존재 전체의 아픔으로 바라보는 교육이 시작됐다. 각자 삶의 터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던 처사, 보살들에게 '현장의 수행자'로 이끄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꾸 늘어나는 환자들을 수용하기엔 역부족. 수렁에 빠진 듯 함께 허우적대던 상황에서 두 가지 화두(話頭)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암에 많이 걸릴까?", "떠나는 이들, 돌보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영남알프스 산자락 양지 바른 곳, 스님의 오랜 기도가 닿다

우선 더 넓고, 더 온전한 돌봄의 공간이 필요했다. 만성 암환자들의 여생은 길지 않다. 마치 급성기 환자들처럼 위기 상황이 속출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들이어서 종합병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못지 않은 긴장과 빠른 처치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 집, 종교와 과학, 마음과 육신이 함께 머무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서원(誓願)도 생겨났다. 병든 이, 떠나가는 이가 괴로움 없이 머물 수 있는, 진짜 '이승의 정토'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던 것.

2011년 5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상북면. 거기에 우뚝 솟은 영남알프스 끝자락 1만여 평에 불교적 생사관을 품은 병원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변변한 기공식도 없이 시작된 공사는 지역민과 불자, 자원봉사자의 작은 손길들로 채워졌다.

2008년부터 시작된 모금운동, 그리고 거기에 응축된 서원은 새로운 작은 손길들을 계속 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삼성그룹 등 큰손들도 가세했다. '정토마을'이란 이름으로 재단법인 면모도 갖췄다.

그렇게 2013년 7월, 마침내 병원(당시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문 열었다. 충청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13년 능행의 노고가 한반도 끝자락, 울산 울주 영남알프스에서 결실을 맺은 순간. "떠나는 이들, 돌보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줄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작은 해결책이기도 했다.

[사진=울산 울주군 정토마을 자재병원]

전국에서 불교세가 상대적으로 세다는 영남, 그것도 부산-울산-대구, 3개 광역시와 연결되는 절묘한 위치다. 김해-양산-창원-밀양 등 주변 10개 도시들과도 차로 1시간이면 닿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자재(自在)'란 화두도 앞에 내걸었다. "스스로 존재하는", 그래서 어떠한 집착이나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다. "스스로 선택해 헌신하는" 마음도 거기서 비롯된다.

능행 이사장은 "수없이 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10대, 20대 젊은이가 암 말기로 죽어갈 때"라며 "죽음이란 절벽 앞에 서서 그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절망해 울부짖던 이들을 떠나보낸 후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오늘을 살아가라'는 얘기를 주위 사람들에 늘 알려준다"고 했다. 천주교 수사들이 암구호처럼 되뇌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다르지 않다.

'자재'를 "환자와 가족, 자원봉사자와 의료진 모두가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두려움과 집착 없이 떠나는 상태"라고도 했다. 한 차원 더 높은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자유롭게 머무는 경지를 깨닫자는 현장의 설법(說法)인 셈이다.

비슷한 말기암 환자인데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남아있는 여생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이들도 여럿 만났다. 멋있었다. 반면에 울부짖으며 자신과 가족을 할퀴며 떠나는 이들도 없진 않았지만….

스님의 기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사이 병원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시범사업기관에 두차례 선정됐고, 2022년 말엔 '정토마을 자재병원'으로 이름까지 다시 다듬었다. 2023년 1월부턴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료기관'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여기 환자들은 의료진 손길뿐 아니라, 스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기도와 돌봄 속에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차를 마시고, 염불을 듣고, 명상하며 가족과 화해하고 자신과도 화해한다. 이젠 병을 미워할 이유도, 세상을 미워할 이유도 없다.

스님은 현대인들이 암에 이렇게 많이 걸리고, 또 죽어가는 것에 대해 불교 전통의 '아나빠나사띠' 호흡법을 권했다. 깊은 호흡을 통해 몸에 산소 흡수량을 늘려 몸의 저항력과 활기를 키우고, 마음의 평정까지 함께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첨단기술로 무장한 현대의학조차 미처 살피지 못하는 허점과 공백을 메울, 또 하나의 심신 수련법이라고 생각해서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암에 많이 걸릴까?"에 대한 불교적 접근이기도 하다.

자재병원엔 불교식 임종의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이 아닌 평화와 수용을 배운다. 보건복지부 전국 평가에선 입원형(32병상) 호스피스와 가정방문형 호스피스, 2개 부문 모두에서 '최우수'도 받았다.

그래서 여긴 점점 더 특별해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승에서의 마지막 쉼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존재의 맑음(정토)과 수용(자재)을 배우는 수행처가 되고 있어서다. 능행 이사장은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또 다른 세계를 여는 문"이라 했다. "그 문 앞에서 누군가 따뜻하게 손잡아준다면, 그 길이 덜 외롭지 않을까요?"

능행 이사장이 환자 가족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말기 암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살피고 있다. [사진=정토마을 자재병원]

윤성철 기자 (syoo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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