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끼리 매일 서로 큰절을 해보니

한겨레 2025. 7. 31. 13: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천도교화악산수도원에서 부부가 맞절을 하는 모습. 사진 조현

오래전 일이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이건 꼭 남편에게 필요한 거란 생각이 든다. 책에 있는 내용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남편에게 제안한다.

“아침에 차 마실 때 책 한 줄씩 읽으면 어때?”

“그러지 뭐.”

잘됐다. 내가 먼저 두세 번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남편에게 정말 필요한 내용이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차를 끓여 식탁에 놓기가 바쁘게 나는 책을 집어 들고 읽는다.

“여보 잘 들어. 어쩌구~ 저쩌구~”

남편은 별 반응 없이 듣는다. 집중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봐줄 만은 하다.

이렇게 매일 아침 남편을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속으로 “이건 정말 당신을 위한 말이네.” 하는 글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남편의 반응이 시원찮다. 듣다가는 화장실을 간다고 하질 않나, 시간이 없으니 아침체조 하면서 듣는다 하고, 어느 날은 기분이 우울해 듣고 싶지 않다 하고… 점점 듣는 둥 마는 둥 태도가 불성실하다. 나는 나대로 속이 상해 아침부터 뿌루뚱해진 말투로 말을 건넨다.

“아니 사람이 책을 읽어 주고 있는데 화장실 간다고 벌떡 일어서면 돼?”

“출근하는 사람이 시간이 없으니 그러지.”

“그래도 그렇지. 예의가 없네.”

“그러니까 화장실 간다 말하고 가잖아. 그리고 좀 간단한 걸로 읽어 주면 안돼?”

“아니 끊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잖아?”

“알아서 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아!!! 진짜!!!”

아침부터 짜증이 올라와 싸울 분위기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말은 못 붙이고 혼자 씩씩대며 삭인다. “내가 자기 생각해서 고른 책이고 이게 얼마나 자기한테 필요한 건 줄도 모르고 저렇게 건성건성이야. 진짜 이해 안 되네! 내일부터 읽나 봐라. 다 자기를 위한 건데!”

다음날 아침 어제 속상한 마음이 남아 남편을 째려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읽어줄까 말까. 이렇게 좋은 걸 일부러라도 귀담아 들어야지. 왜 저리 고집불통인지. 차리리 읽지를 말자. 누가 손해인지 보자고.” 그러고는 일부러 책을 못 본척한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여유롭게 혼자 읽는다. 그렇게 한참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서서히 들어오는 마음이 이건 남편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게 꼭 필요한 이야기 아닐까?! 이 책을 분명히 예전에 읽을 때는 남편에게 필요한 이야기로 들어왔는데 이게 왜 이렇게 바뀌었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내 마음도 이미 조금은 바뀌어져 있다. 남편에게 그렇게 읽어주고 싶었던 것이 이제는 혼자 읽어도 그렇게 좋은 내용이니 나도 모르게 남편과 이야기할 때 스스럼없이 책 내용을 이야기 해준다. 그럼 남편이 귀담아 들어줄 때가 많다. 그러면 나는 또 신이 나서 잘 기억해 두었다가 시간 날 때마다 이야기 해주곤 했다. 이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괜히 남편에게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고집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러고 있는데 남편이 묻는다.

“그런데 왜 요즘은 책을 안 읽어주는가?”

“……”

남편에게 고집부려가며 욕심 사납게 읽어주려 했던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말을 얼버무린다.

“그냥, 출근 시간에 바쁘니까 나중에 읽어도 되지 뭐?”

“하던 거 그냥 읽어주소.”

“알겠어. 그럼 다시 내일부터 읽을게.”

부끄러운 마음에 어색하고 어정쩡하지만 아침 책 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픽사베이

중학교를 졸업한 딸아이와 7개월 정도 여행을 했다. 여행 가기 전, 우리 세 가족은 서로가 있는 곳에서 하루를 잘 맞고 보낼 수 있도록 작은 의식을 하자고 약속했다.

내가 그동안 읽어 주던 책을 남편이 대신 읽어 아침마다 카톡으로 보내주겠단다. 우리 둘은 그걸 확인하고 촛불 켜서 마주 보고 삼배를 하겠다 했다. 이동이 없는 아침엔 시간차는 있지만 카톡으로 보내온 영상을 보는 게 참 재미났다. 처음엔 목소리에 집중해 보내더니 날이 갈수록 주변 얘기도 함께 보내고, 자신의 웃긴 모습도 실어 보내고 또 어느날은 잊었다며 저녁에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7개월 동안 책 읽는 영상을 잘 보내줬고 우리도 덕분에 삼배를 꼬박 꼬박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는 자취한다며 집을 나갔다.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이니 자신이 책을 읽어준다며 아침마다 책을 읽는다. 이제까지는 내가 책을 골랐는데 본인이 생각한 책이 있다며 그 책으로 읽자고도 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루미를 두 번이나 읽었으니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읽어보게.”

“누군데?”

“카비르”

“뭐? 그런 난해한 시인을?”

“딱 내 취향인데!”

“하!~ 수준이 엄청나십니다!”

또 다른 제안도 한다. 남편이 시간이 날 때마다 삼배를 했는데 좋았다며 아침에 책을 읽고 난 후에 삼배를 같이 하면 어떻겠냐 한다. 나야 뭐 거절할 이유 없이 단번에 오케이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 일정은 대충 틀을 잡아갔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5시 50분 알람이 울리고 남편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나가 찻주전자에 물을 받아 앉히고 화장실엘 다녀와서 차를 내린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책을 보느라 10분에서 15분 정도 늦게 방에서 나간다. 그리고 화장실 들렀다 식탁에 마주 앉는다. 그러면 책을 읽는다. 어느 날은 둘 다 다른 이야기에 빠져 까먹을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전날 안 좋았던 기분에 못 읽기도 한다. 주말이면 남편이 밭에 일하러 나가고 싶은 급한 마음에 얼른 일어나 혼자 물 마시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달콤한 늦잠에 빠져 빼먹을 때도 있다.

우리 둘 다 뭔가 꼭 해야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것에서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물론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까지는 욕심도 부리고 오기도 부리고 성질도 내고 다시는 안 할 것처럼 토라지기도 했다. 또한 하면서도 마치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될 일처럼 감시하는 눈초리로 서로를 눈여겨보며 바라보기도 했다. 읽어주면서도 속상하고 속상한데 뭔가 이건 꼭 해야 할 일 같아 포기 못하니 더욱 속상하고 그러면서 꽤 많은 날을 보냈다. 아마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애걸복걸하는지… 그러다 어느 날은 쌩하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듯 토라져 있는 나를 보고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는데 10여 년을 보낸 것이다. 세월이 지나 서로에 대한 기대도 어느새 많이 놓아졌나 보다. 이제는 상대방에게 읽어준다는 생각이 없다.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고 아니어도 언제라도 서로 만날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책을 들어 읽는다. 또한 여유롭게 서로를 배려하는 듯, “이번엔 당신이 책을 골라보는 게 어때?” “아이 왜 이러세요? 이번엔 당신이 고를 차례죠. 골라오세요~”

어느 때는 읽던 책을 두고도, “이번 책은 잘 들어오지 않는데 바꿔보면 어때?”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그럼 좀 긴 걸로 하세. 너무 짧으면 뭔 말인지 모르겠고 ^^” “그건 또 그러네 ^^”

남편이 명예퇴직를 했다. 첫 한 주는 바깥 볼일에 집을 비웠다. 2주 째는 집에서 아침을 여유롭게 맞는다. 남편은 일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전에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꿈만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일어나는 시간은 오히려 더 빨라졌는데도 본인 생각은 알람 없이 일어나니 그런 생각이 드나보다. 아침에 마루에 나가 앉아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하고 싶은 밭일이나 정원일에 대한 고민이나 계획도 매일 같이 수시로 이야기한다. 일하다 말고 들어와 간식을 찾기도 하고, 물을 마시러 오기도 하고, 때로는 힘쓰는 일을 한다며 아침밥을 간단히 차려달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며칠을 밭에 나가 땀 흘리는 즐거움으로 보낸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며 쾌적한 회사생활과 밭에서의 야외생활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몸을 안 쓰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지만 밭을 이리저리 둘러보러 다니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드는 일이라 한다. 그래도 스스로 시간을 챙겨가는 게 좋다고 한다. 저녁이면 한 일도 없는데 잠이 쏟아진다며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옆에 있는 나도 덩달아 불 끄고 자야 할 것 같은 피곤함을 전염시킨다. 다음날이면 다시 일찍 일어나 체조로 하루를 연다. 내가 방에서 꼼지락거리니 일부러 다시 들어와 깨우며 차 마시자 한다. 부엌으로 나가니 남편 손에 책이 쥐어져 있다. 내가 앉기가 무섭게 책을 읽어 준다. 속으로 웃음이 난다. 마치 어느 적 내가 욕심스럽게 책을 읽어 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어 남편은 뒤로 돌아가 촛불을 켜고 기다린다.

“지금 바로 삼배하자고?”

“나도 할 일이 있어요.”

“참내~”

모처럼 이주 만에 책 읽기와 삼배를 후다닥 마친다.

삼배하고 마주 선 남편이 결심하듯 천천히 말한다.

“이것만은 잊지 말고 합시다!”

“아~ 예~ 그럽시다! ^^”

글 향원(전남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