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팬심 열고 잠그는 ‘굿즈 열풍’
“이거 구하려고 얼마나 앱을 들락거렸는지 몰라요. 그래도 손에 넣으니 뿌듯하네요.”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스타벅스 프리퀀시’ 대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예쁜 가방 하나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커피를 마셔 e-프리퀀시 17개를 모았지만, 정작 원하는 색상의 제품은 이미 동난 뒤였다는 푸념 섞인 후기들, 재고가 있는 매장을 찾기 위해 수시로 앱을 새로고침하고, 결국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매장에서 겨우 ‘득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연례행사처럼 익숙하다.
이처럼 특정 상품, 즉 ‘굿즈’를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쏟아붓는 ‘굿즈 사냥꾼’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노력의 결과물이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성취의 증표와도 같다. 스타벅스 프리퀀시부터 인기 캐릭터 키링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굿즈 열풍’은 이제 우리 주변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단순히 물건 사는 행위 넘어
취향·정체성 드러내는 수단
‘한정 수량’으로 희소가치도
사재기 따른 소비자 피해 확산
건전한 소비문화 저해 우려도

◇‘한정판’이라는 매력, 도파민을 불러일으키다= 굿즈 열풍의 중심에는 ‘희소성’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한정 수량’, ‘시즌 한정’이라는 말은 평범한 상품에 ‘특별함’이라는 가치를 더한다. 누구나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더 갖고 싶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과도 같다. 최근 유행하는 캐릭터 키링을 수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하는 키링을 얻기 위해 돈을 쏟아붓기도 하고 웃돈을 더 내더라도 원하는 상품을 얻는다고 한다. 불필요한 지출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 있어 원하는 상품을 얻었을 때의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경쟁과 돈을 지불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분출되는 성취감과 쾌감, 즉 도파민은 굿즈 열풍을 이끄는 핵심적인 감정이다.
◇‘취향’을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 굿즈는 이제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됐다. 내가 어떤 굿즈를 소유하고 있는지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시대다. 아이돌 팬들은 응원하는 그룹의 굿즈로 가방을 꾸미고, 일상생활에서도 굿즈를 통해 팬심을 내비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굿즈들

호랑이 ‘작호도’를 기반으로 만든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핸드폰 케이스.
이렇게까지 굿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기다림과 비용을 뛰어넘는 기쁨이라고 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지만 굿즈를 받았을 때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받자마자 옷을 입고 친구에게 인증샷을 보내며 자랑까지 했고, 배지는 가방과 노트북 가방에 모두 부착했죠. 지금 아니면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문화가 뜨고 있는데, 유행일 때 굿즈를 사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친구들이 모르는 SNS 계정에도 자랑 글을 올리며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즐기기도 했어요.”

스타벅스 가방
◇소비를 넘어 ‘재테크’ 수단으로… 리셀테크의 그림자= 굿즈 열풍은 ‘리셀(Resell, 되팔기)’이라는 새로운 경제 현상을 낳았다. 한정판 굿즈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웃돈을 붙여 되파는 ‘리셀테크’가 성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구하기 힘든 굿즈들은 리셀 플랫폼에서 정가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러한 리셀 시장 규모는 수천억원대로 추산될 만큼 거대해졌으며,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문 리셀러들의 사재기로 인해 정작 굿즈를 원하는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기업들의 과도한 ‘희소성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건전한 소비문화를 해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수에게만 허락된 행운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다수의 충성 고객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원하는 굿즈를 구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다음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비싼 값에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품절 대란’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박준영 기자 bk604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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