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째 비 한방울 없는 제주…말라가는 당근밭, 깊어지는 시름

"허구한 날 물 뿌려봤자지… 땅이 이렇게나 뜨거운데, 물 몇 방울 뿌린다고 싹이 나겠어요?"
지난 29일 오후 2시께,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당근밭. 바싹 말라 하얗게 변한 흙을 가리키며 농민 A씨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던 A씨의 얼굴에는 메마른 밭과는 대조적으로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비 예보를 믿고 파종에 나섰지만, 당근이 가장 잘 자라는 '3~4일 안의 비'는 오지 않았다"며 "그 뒤로도 비는커녕 작열하는 햇볕만 계속됐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폭우와 가뭄이 반복돼 밭을 세 번이나 갈아엎어야 했던 A씨는 올해도 재파종을 염두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 동부지역의 올해 7월 강수량은 30일 오후 1시 기준 고작 44.7㎜.
평년 강수량인 271.3㎜의 16.4% 수준에 불과하다. 구좌에 마지막으로 비가 내린 건 19일로, 그마저도 3.5㎜에 그쳤다.

40년 경력의 부석희씨(60)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사이"라고 말했다.
부씨는 "당근은 원래 생명력이 아주 강한 작물인데, 요즘 같은 폭염이나 집중호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며 "당근처럼 발아 시기와 폭염, 가뭄이 겹치는 농작물은 몇 안 된다. 문제는 이런 날씨가 해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라고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자구책으로 밭마다 수도며 물백까지 설치하지만, 실제 농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농민은 열 명 중 한 명밖에 안 된다"며 "한 달 내내 물 찾으러 다닌다고 한들 이 뜨거운 여름에 모래밭에 물을 뿌린다고 씨앗이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씨앗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지는 기후 속에서 버팀목이 돼줘야 할 농작물재해보험마저 높은 문턱을 세우며, 농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재해보험은 본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전해주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지난해 당근 보험 가입 조건이 '파종 직후 가입'에서 '출현율 50% 이상'으로 바뀌더니, 올해는 '출현율 80% 이상'으로 더 강화됐다.
문제는 대부분의 당근 농가가 사용하는 대표 품종 '드림7'의 공식 출현율이 75%에 그친다는 점이다.
보험 가입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점에 대해 "자연재해를 보장하겠다던 보험이 오히려 농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폭염과 가뭄, 잦은 기상 오보, 그리고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보험 조건. 제주 농민들의 여름은 해마다 더 뜨겁고 고달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