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째 비 한방울 없는 제주…말라가는 당근밭, 깊어지는 시름

원소정 기자 2025. 7. 3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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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위기의 산업현장] ③ “언제면 오나…” 단비 기다리는 농민들
폭염은 단순한 계절 현상이 아닌 '재난'으로,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일터의 생존 리스크가 됐다. 해마다 폭염 일수는 증가하고, 그 강도와 시기도 예측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특히 건설, 농업, 어업, 물류 등 야외 노동이 필수적인 현장은 무더위의 직격탄을 맞고 있음에도,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제주의소리]는 폭염 속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달라지는  기후 양상과 대응체계 등 현장의 기록을 짚어본다. 
지난 29일 오후 2시께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당근밭에서 한 농민이 메마른 땅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허구한 날 물 뿌려봤자지… 땅이 이렇게나 뜨거운데, 물 몇 방울 뿌린다고 싹이 나겠어요?"

지난 29일 오후 2시께,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당근밭. 바싹 말라 하얗게 변한 흙을 가리키며 농민 A씨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던 A씨의 얼굴에는 메마른 밭과는 대조적으로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비 예보를 믿고 파종에 나섰지만, 당근이 가장 잘 자라는 '3~4일 안의 비'는 오지 않았다"며 "그 뒤로도 비는커녕 작열하는 햇볕만 계속됐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폭우와 가뭄이 반복돼 밭을 세 번이나 갈아엎어야 했던 A씨는 올해도 재파종을 염두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 동부지역의 올해 7월 강수량은 30일 오후 1시 기준 고작 44.7㎜.

평년 강수량인 271.3㎜의 16.4% 수준에 불과하다. 구좌에 마지막으로 비가 내린 건 19일로, 그마저도 3.5㎜에 그쳤다.

더욱이 제주 장마는 6월12일 시작돼 불과 2주 만인 26일에 끝났다. 기상 관측 이래 제주지역 장마가 6월에 끝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6월 강수량도 145.2㎜로, 평년 207.2㎜의 68.9%에 그쳤다.
밭에 물을 주기 위해 스프링클러 설치 작업을 하던 A씨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있다. ⓒ제주의소리

40년 경력의 부석희씨(60)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사이"라고 말했다.

부씨는 "당근은 원래 생명력이 아주 강한 작물인데, 요즘 같은 폭염이나 집중호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며 "당근처럼 발아 시기와 폭염, 가뭄이 겹치는 농작물은 몇 안 된다. 문제는 이런 날씨가 해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라고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자구책으로 밭마다 수도며 물백까지 설치하지만, 실제 농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농민은 열 명 중 한 명밖에 안 된다"며 "한 달 내내 물 찾으러 다닌다고 한들 이 뜨거운 여름에 모래밭에 물을 뿌린다고 씨앗이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씨앗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기후는 당근뿐 아니라 제주 수박 농가도 덮쳤다. 이달 초 수확을 앞두고 있던 수박 농가들도 강한 햇볕에 일소과(햇볕 데임) 피해가 속출했다.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의 당근 새싹이 올라온 모습. ⓒ제주의소리
40년차 농사 경력을 가진 부석희씨는 사진 속 풀(쇠비름)이 극한 가뭄에 돋아난다고 했다. 일주일 전 파종을 마친 밭에 당근 새싹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이처럼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지는 기후 속에서 버팀목이 돼줘야 할 농작물재해보험마저 높은 문턱을 세우며, 농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재해보험은 본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전해주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지난해 당근 보험 가입 조건이 '파종 직후 가입'에서 '출현율 50% 이상'으로 바뀌더니, 올해는 '출현율 80% 이상'으로 더 강화됐다.

문제는 대부분의 당근 농가가 사용하는 대표 품종 '드림7'의 공식 출현율이 75%에 그친다는 점이다.

보험 가입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점에 대해 "자연재해를 보장하겠다던 보험이 오히려 농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폭염과 가뭄, 잦은 기상 오보, 그리고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보험 조건. 제주 농민들의 여름은 해마다 더 뜨겁고 고달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