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조약돌의 서(書) / 성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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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은 시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다시 태어난다.
조약돌의 서는 그 궤적을 생각하며 쓴 시조다.
조약돌은 그동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몸에 모두 적거나 새기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약돌의 서즉 조약돌의 글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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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의 서(書) / 성국희
야윈 만큼 둥근 궤적, 당신의 서사였죠/ 태풍에게 천둥에게 하류에서 쓰는 편지/ 그 통점 약이었음을 담담히 고백하시네// 날카롭게 굽이치던 물살 앞에 떨군 고개/ 그날 버린 자존심은 자존심도 아니라고/ 끝없는 채질에 감긴 물풀의 춤을 보면// 지울 것은 지우라며 노래하는 강물 앞에/ 인색했던 지우개의 모서리가 닳아가자/ 유실된 기억의 상류, 상처마저 환하시네
『대구시조』(대구시조시인협회, 2024)
조약돌은 시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다시 태어난다. 조약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손으로 만지작거리거나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잔잔한 감흥에 젖는다. 보들보들 매끌매끌, 감촉이 좋아 더욱 정겹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들게 된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겪은 것을 떠올리며, 조약돌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웬만큼 물이끼도 앉은 돌을 살피다가 생각은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오른다.
「조약돌의 서」는 그 궤적을 생각하며 쓴 시조다. 야윈 만큼 둥근 궤적이 당신의 서사였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조약돌은 그동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몸에 모두 적거나 새기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약돌의 서」즉 조약돌의 글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또 이 글은 편지이기도 하다. 어느덧 하류에 이른 조약돌은 태풍이 생각났을 것이다. 천둥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젠 그들에게 지금의 내 안부를 전할 때가 되었다고 여기고, 그 통점마저도 약이었음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굳이 시네, 라고 존칭 어미를 붙인 것은 앞에 나온 시어 당신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한때 조약돌은 날카롭게 굽이치던 물살 앞에 고개를 떨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날 버린 자존심은 자존심도 아니라고 끝없는 채질에 감긴 물풀의 춤을 보며 깨닫기도 한다. 조약돌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화자가 극진히 생각하는 당신이 아닌가? 이 자존심, 자존감은 삶의 동력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어기차게 견인하는 힘이다. 강물은 지울 것은 지우라며 노래하고, 인색했던 지우개의 모서리가 닳아가자 유실된 기억의 상류가 다가오면서 상처마저 환한 것을 본다. 이러한 경지는 원숙에 이르기 직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격이나 지식이 깊고 원만하여 어떤 아우라를 지닌 존재가 된 것이다.
성국희 시인의 「조약돌의 서」는 조약돌의 긴 여정을 살피면서 지극한 분인 당신을 떠올리는 시조다. 조약돌에서 마음에 그리던 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삶의 궤적을 의미화하면서 진정성 있는 서사를 엮고 있다.
어언간 하류에 이른 조약돌은 지나온 길에서 부딪쳤던 그 모든 일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임을 자각하고, 몹시 느꺼워하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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