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바이오 전략, 지정학에 해답 있다 [김선영의 K-바이오 인사이트]
편집자주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거론되지만, 불확실성도 여전한 한국 바이오 산업. 바이오 분야 '1호 교수 창업자'이자, 지난 27년간 글로벌 수준의 과제에서 성패와 영욕을 경험한 김선영 교수가 우리 산업 생태계의 이슈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세계 진출 방안을 모색한다.
한중일은 불과 2시간 비행거리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민관이 한창 바이오 전략을 짜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이제 바이오 분야에서도 산업 및 국가 차원의 거시 전략을 수립할 때는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지정학은 지리적 요인이 국제‧정치‧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우리 주변국은 여러 관점에서 볼 때 큰 나라들이다.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이들의 자원과 시장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4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이 약 18.8조 달러, 일본 4조 달러, 한국 1.9조 달러이다. 참고로 미국은 29조 달러, 유럽연합(EU)은 19조 달러이다. 한‧중‧일의 합이 EU 상위 10개국의 합을 능가하고, 미국의 90%에 가깝다. 중국과 일본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가 서울에서 2시간 비행 거리 내에 있다. 대한민국은 하기에 따라 기회 혹은 멍에의 땅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2024년 중국 제1의 제약사는 시노팜으로 매출액 규모가 약 130조원이고, 10위는 2조~3조원대이다. 일본 1위는 다케다 40조원, 10위는 4조원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바이오시밀러를 하는 2개 회사를 제외하면, 1위는 유한(2조원)이고 10위는 8,000억원대 회사다. 1등끼리 비교하면 중국이 우리의 65배, 일본이 20배다.
각국마다 집계 방식이 달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규모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3개국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규모를 비교해 보면 중국 670조원, 일본 216조원, 한국 26조원이다. 우리보다 중국은 26배, 일본은 8배가 더 많다.
그러나 2020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FDA에서 허가를 받은 - 복제품과 바이오시밀러를 제외한 - 신약의 숫자를 보면 양상은 달라진다. 중국은 3개 제품인데 모두 항체이다. 일본은 4개로서 3개가 합성의약이고, 다른 하나는 항체이다. 우리나라는 3개로서, 한미의 롤로틴스와 유한의 렉라자는 합성의약이고, GC 바이오파마의 알리그로는 혈장에서 분리한 단백질이다. GDP, 제약사 매출규모, 국가 연구개발 예산 3개 지표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절대적 열세지만 글로벌 신약 개발에서는 뭔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은 움직임이 전자제품이나 반도체에서와 같이 화산 폭발로 이어질지 아니면 폭죽 수준이 될지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적은 돈으로, 실패 가능성은 최대한 낮추고, 빠른 시간 내 시장에 들어가, 큰돈 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가와 산업 차원의 전략 수립에서 간과되고 있는 관점 하나를 소개한다.
국가든 기업이든 전략 수립 과정에서 지리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 중일 양국은 하루 생활권에 있고, 역사와 문화적으로도 가깝다. 우리는 이 두 나라가 가진 과학기술 역량, 자금, 임상, 제조, 시장 등을 우리의 가용 자원으로 보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의 과학과 기술, 특히 기초과학은 미국 다음으로서 모든 유럽 선진국들을 능가한다. 하지만 일본 바이오의 경우 기초 연구와 상용화 개발 사이에 괴리가 커서 사장되는 성과들이 많다. 연구자들의 벤처 정신 결여와 후생성의 보수성이 일본 바이오‧제약 발전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중국은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의지, 거대한 규모의 시장과 자금, 수많은 고학력 연구자, 우수한 중하위 실험실 근로자들과 유연한 노동 조건 등이 강점이다. 아직 창의적 혹은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성과, 즉 새로운 뭔가는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 3년 동안 서방의 투자자들과 대규모의 비즈니스 딜을 성사시켰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열세이지만, 상용화 개발에서는 무모할 정도의 도전 정신과 추진력을 갖고 있다. 많은 수의 벤처회사와 아직도 식지 않은 스타트업 열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R&D 전략은 이런 지정학적 요소들을 엮어서 연구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중국‧일본의 가상 협업 사례를 상정해 보자. 상용화 가치가 있는 기초과학적 결과는 일본과 미국의 논문을 통해 찾아내고, 상업화 도전 시도는 미국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는 상용화 개발을 목적으로 스타트업을 설립한다. 1차적으로는 국내에서 투자를 받아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하고, 시간과 자금이 많이 드는 규제 실험은 중국에서 하고, 추가 투자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받아 의약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여,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이전 딜을 만들거나 미국에서 상업적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FDA로부터 허가를 받아 시장에 진입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중‧일 모두가 이익을 보는 구도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글로벌 강국으로서 사고와 행동의 지평을 더욱 넓혀야 한다. 지척에 위치한 두 거인, 중국과 일본의 유형·무형 자산을 우리의 가용 자원으로 간주해야 한다. 동북아 전체를 ‘놀이터’로 삼아 국가 R&D 전략을 설계해 보자. 정부 예산을 나누어 쓰겠다는 내향적 접근보다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중‧일과 협력한다면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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