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출판인 된 MBC 전 앵커 박혜진 [인터뷰]

권영은 2025. 7. 31. 04: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BC를 대표한 아나운서 출신 박혜진 다람출판사 대표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올해 펴낸 소설 3권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여름에 어딘가로 가신다면 용기를 가져 보셔라.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MBC '뉴스데스크' 앵커(2004~2009) 출신 박혜진 전 아나운서가 2014년 퇴사하며 '다람출판사'를 차렸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그의 손에는 자신이 만든 한국문학 선집(앤솔러지)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가 들려 있었다. 그는 "제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휘발되지 않는 일" 출판이라는 낯선 방향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그는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한 발짝을 뗐다. 기준은 딱 셋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방송과는 조금 다르게 휘발되지 않는 일, 창작을 하는 일'이라면 좋겠다는 것. 그에게는 책 만드는 일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출판사를 열었다. "책 쓰는 작가가 아니라 어떻게 출판 일을 하게 됐냐고요? 좋은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경신하는 출판 시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10여 년을 버텨 왔다. 4년 전부터는 1인 출판사 대표로 전면에 나서 기획부터 유통·홍보까지 도맡고 있다. "본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출판을 해보고 싶어서"다. "'퇴사했으니까 한번 해볼까' 그런 마음은 진작에 없었어요. 한다면 제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이었죠. 세상에 기록될 만한 책을 내놓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각오가 처음부터 있었어요."

박혜진 다람출판사 대표는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방송과 출판은 비슷한 면이 있다"면서도 "책은 서점에 가서 직접 고르고 물성을 느껴보고 문장에 밑줄도 긋고 행간의 의미를 살피는 사유의 과정이 있기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한 매체"라고 했다. 남동균 인턴기자

오롯이 그의 손으로 만든 첫 책은 '그 이름을 부를 때(2021)'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여성인권운동가인 김복동의 생애에 대해 송원근 다큐멘터리 감독이 쓴 에세이집. 송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의 시사회 사회를 본 인연이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시대적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로 새로운 시선을 던져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근 펴낸 아르헨티나 작가 카밀라 소사 비야다의 자전소설 '나쁜 여자들'이 대표적이다. 생존을 위해 성매매를 하는 성적소수자 '트라베스티'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나왔을 때 독자들이 가보지 못한 어떤 세상과 인물에 한 번쯤 스며들 수 있는 이야기라서 출간을 결심했죠. 책 자체도 굉장히 용감한 소설이어서 저도 용기를 좀 내봤습니다."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박혜진 다람출판사 대표가 펴낸 송원근의 '그 이름을 부를 때'와 카밀라 소사 비야다의 '나쁜 여자들'. 다람 제공


한국문학 시리즈로 독자들과 얽히고파

올해는 특히 터닝포인트로 남을 해다. 대형 출판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문학 출판에도 뛰어들었다. 3명의 작가가 쓴 단편소설 3편을 담는 앤솔러지 '얽힘' 시리즈를 시작했다. 1권 '봄이 오면 녹는(성혜령·이서수·전하영)'을 지난 1월 낸 데 이어 2권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김이설·이주혜·정선임)'까지 선보였다. 눈 밝은 문학 독자이기도 한 박 대표의 기획이 돋보이는 시리즈다. 양자역학의 개념인 '얽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외딴섬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주 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얽힘'을 소설 안에서 구현해 보고 싶었어요. 우리의 삶이 수없이 많은 타인과 얽혀 있는 것처럼요."

다람출판사가 올해 출간한 한국문학 앤솔러지 '얽힘' 시리즈 2권. 각 권에는 3명의 작가가 쓴 3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다. 다람 제공

3편의 단편은 각각이 독립된 작품이면서 다른 소설과 인물이나 배경, 세계관을 나누고 있다. 3명의 작가가 사전에 두세 번 모여 공통의 키워드를 뽑아낸 후 각자 소설을 쓰고 초고를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했다. 박 대표는 "날것을 드러내는 게 작가님들께 부담이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사실상 공동 작업을 함으로 인해 더 확장되는 좋은 경험이었다더라"며 "독자 입장에서도 풍만한 독후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얽힘 시리즈는 이미 7권까지 작가진이 꾸려졌다. 섭외의 비결은 "진심을 담은 읍소". 서장원·함윤이·예소연·한정현·황모과 등 현재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대기 중이다.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는" 출판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는 작은 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겠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는 게 무척 고단한 일이지만 그만큼 애정이 배가돼요. 천천히 우리 호흡으로 한 권, 한 권을 출간하기에 내 책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금 더 길게 꾸준히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