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펄펄 나는 슈퍼맨·판타스틱4, 한국에선 왜 주저앉았나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들이 미국 밖에선 힘을 못 쓰고 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콘텐츠의 양대산맥인 마블과 DC가 내놓은 신작들이 미국 여름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두 작품은 지난주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과 그보다 2주 전 공개된 DC 스튜디오의 ‘슈퍼맨’. 모두 기본 뼈대만 두고 작품 전체를 갈아엎은 ‘리부트’ 영화로, 그간 부진을 겪던 두 스튜디오는 이 작품들로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판타스틱 4’는 같은 캐릭터로 앞서 제작된 세 편의 실패를 만회할 만큼 흥행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개봉 첫 주말 극장 수입은 1억1,764만 달러(약 1,625억 원)로 올해 개봉작 중 ‘마인크래프트 무비’ ‘릴로 앤 스티치’ ‘슈퍼맨’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비평가들은 기존 마블 영화의 거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플롯에서 벗어나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매력과 코믹북의 키치함을 되살린 점을 높게 평가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기본으로 돌아간 ‘판타스틱 4’는 올해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판타스틱 4’는 지극히 미국적 향수를 품고 있다. 맷 샤크먼 감독도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낙관주의가 넘치던 1960년대 미국의 시대적 정신과 분위기가 이 영화의 DNA”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 관객 사이에선 판타스틱 4와 갤럭투스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유치하다는 평가와 함께 액션 장면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캐릭터 개별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개봉 후 29일까지 엿새간 관객은 40만 명에 그쳤다.
앞서 개봉한 ‘슈퍼맨’ 역시 미국과 한국의 반응이 크게 갈린다. 미국에선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뒤 ‘판타스틱 4’가 개봉하기 전까지 14일 연속 정상을 지켰다. DC의 복잡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슈퍼맨의 원래 매력을 살리고 슈퍼히어로의 인간적 매력을 부여하면서 제임스 건 감독 특유의 유머를 더했다는 호평을 현지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받고 있다. 경찰국가, 이민자 문제 등 미국 사회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룬 점도 공감을 얻었다. 미 블룸버그뉴스도 “’슈퍼맨’은 친이민적이고 반트럼프적 영화”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의 통쾌하고 짜릿한 한 방을 기대하는 한국 관객은 악당에게 시종일관 밀리는 전개와 미국 사회 문제와 국제 정세를 전면에 내세운 구성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영화 모두 미국 외 지역에선 성적이 부진하다. ‘슈퍼맨’은 27일까지 미국 극장가에서만 2억8,949만 달러(약 3,999억 원)를 벌어들였는데 미국 이외 지역에선 2억1,410만 달러(약 2,957억 원)에 그쳤다. ‘판타스틱 4’도 지난 주말 사흘간 미국에서 1억1,764만 달러, 미국 이외 지역에서 9,905만 달러(약 1,368억 원)를 벌었다. 세계적 흥행작들이 해외에서 미국의 1.5~2배의 극장 수입을 올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제임스 건 감독은 “슈퍼맨이 일부 지역에선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보다 덜 알려져서일 것”이라며 “지금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반미 정서도 우리에게 불리한 점”이라는 자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슈퍼히어로 영화 고유의 쾌감보다 미국의 ‘로컬’ 정서에 기댄 점이 흥행의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영화 배급 관계자는 “두 영화 모두 마블과 DC의 세계관을 잘 모르는 관객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려 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정작 마블·DC의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요소도, 일반 관객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도 “한국 관객들에게 이민자나 전쟁 등 미국의 사회·국제적 관심사와 미국 특유의 가족주의가 와닿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영화에선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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