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한양 천도, 태조의 강한 의지와 설득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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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천도하고자 하시면 이곳이 좋습니다."
1394년 8월13일 태조 이성계가 재상들에게 한양 천도 논의를 명했고 재상들이 합의해 답한 것이 앞의 말이다.
8월24일 태조가 도평의사사의 한양 천도 결의문에 결재했고 9월1일 새수도궁궐조성특별위원회(新都宮闕造成都監)를 설치했다.
'태종실록'의 1394년 8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의 기사에는 한양 천도를 둘러싼 태조와 신하들 사이의 숨 막히는 공방전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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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천도하고자 하시면 이곳이 좋습니다."
1394년 8월13일 태조 이성계가 재상들에게 한양 천도 논의를 명했고 재상들이 합의해 답한 것이 앞의 말이다. 하륜 홀로 "산세는 비록 볼 만하지만 지리 술법으로는 불가하다"고 반대했지만 태조는 재상들의 다수 의견에 따르는 모양새를 갖추며 한양 천도를 공식 선언했고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8월24일 태조가 도평의사사의 한양 천도 결의문에 결재했고 9월1일 새수도궁궐조성특별위원회(新都宮闕造成都監)를 설치했다. 9월9일엔 권중화·정도전 등을 한양으로 보내 종묘·사직·궁궐·시장·도로의 터를 정해 지도로 그려 보고하게 했다. 이때 한양도성의 큰 틀이 정해졌고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일부 파괴가 있었지만 지금도 한양도성의 구조와 상징 풍경은 거의 그대로 살아 있다.
고려 수도 개성의 지덕이 이미 쇠해 지기가 왕성한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천도했다는 식의 풍수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 담론이었던 풍수는 한양 천도 주장을 관철 또는 반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근본 원인은 '반드시 천도하고자 하시면 이곳이 좋습니다'란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뜻은 이렇다. '우리 신하들이 일치단결해 그렇게나 반대했는데도 천도의 뜻을 굽히시지 않고 오랫동안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설득하시니 이제는 그 뜻을 받들어 이곳 한양으로 천도하시는 것에 찬성합니다.'
태조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재천도를 결정한 태종 이방원에게 자신의 한양 천도 이유를 밝혔다. "처음으로 내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옮겨가는 어려움을 어찌 알지 못했겠느냐. 하지만 송도는 왕씨의 옛 수도여서 계속 살 수는 없었다."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했으니 그에 걸맞게 새로운 수도를 건설해서 천도해야 건국의 정당성이 깊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천도를 단행해야 했고 자신이 실행하지 못하면 후대의 임금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전제가 깔렸다.
이렇게 강한 태조의 천도 의지는 처음엔 조급함으로 나타났다. 개성의 수창궁에서 즉위한 1392년 7월17일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8월13일 한양 천도의 명령을 내렸지만 신하들의 반격으로 20일 만에 흐지부지됐다. 이에 좀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계룡산 신도안 건설도 신하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거의 억지로 진행되다 절치부심하며 반격을 준비한 신하들의 새로운 풍수이론의 논리에 막혀 채 1년이 안 돼 좌절됐다.
태조는 두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훨씬 치밀한 설득계획을 세웠다. '태종실록'의 1394년 8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의 기사에는 한양 천도를 둘러싼 태조와 신하들 사이의 숨 막히는 공방전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태조는 신하들의 다양한 반대논리를 충분히 들어줬고 풍수적으로 한양의 부족한 점에 대한 보완논리를 개발해 역공했으며 무학대사 자초를 숨겨놓았다가 등장시켜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결국 신하들이 태조의 의지를 받아들이면서 양측의 의견이 같아졌고 그런 합의의 힘을 바탕으로 한양 천도를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진행해나갈 수 있었다.
천도를 결정하기 전 풍수적으로 부족한 공간이었던 한양은 임금과 신하의 의견이 같아지자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명당으로 포장됐다. 도평의사사의 한양 천도 결의문은 이렇게 끝난다. '한양을 가만히 살펴보면 안팎으로 산하의 형세가 훌륭한 것은 옛날부터 칭하던 바고 사방 도로의 거리가 균등하며 배와 수레도 통할 수 있으니 여기에 도읍을 정해 후대에 길이 전하는 것은 하늘과 백성의 뜻에 진실로 합당합니다.'
한양 천도 논의에서 풍수의 명당은 정치적 전개양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믿음의 공간이었다.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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