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25] 별로 날아간 생텍쥐페리

이응준 시인·소설가 2025. 7. 3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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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모자를 쓴 생텍쥐페리.

1944년 7월 31일 나는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 오늘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홀로 조종하던 전투기와 함께 하늘에서 실종됐다. 이 ‘실종’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몇 번의 물증 확보와 증언을 거쳐서 7월 31일 그날 독일군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99% 확정된다. 전쟁 중 ‘순국(殉國)’한 것이다.

언젠가 내 동료 소설가가 ‘어린 왕자’에 대해 이렇게 평하는 걸 들었다. “단 한 줄도 뺄 게 없는 작품이지”. 시(poem)란 ‘있을 것만 있는 상태’라고 본다면, ‘어린 왕자’는 산문이 도달한 시라고 할 수 있다. 후일 우연히 알게 됐는데, 생텍쥐페리는 작품 창작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더랬다. “더 이상 추가할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완벽함이 성취된다.”

하지만 완벽한 작품을 쓴 사람이라고 해도 고통과 상처가 없는 인생을 살 수는 없다. 특히 실종(죽음) 직전까지 그의 말년이 그랬다. 나치의 괴뢰 정부였던 비시 정부가 생텍쥐페리를 이용하려 하자 그는 이에 거리를 두었다. 자유 프랑스 임시정부의 드골 측 일각은 이런 그를 친독 인사로 몰았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재입대해 무리한 비행을 나섰다. 정치적 색깔 논쟁에 휘말려 우울증과 폭음에 시달리던 그가 비행기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거라는 설이 그의 순국 확정 전까지 돌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드골 측 일각이 생텍쥐페리를 비판한 건 사실이어서 살아있었다면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새로운 집권자들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괴로움을 겪었을 터이다.

실종(죽음)이 없었더라면 프랑스 50프랑 지폐에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와 함께 새겨지는 등의 경향에 더러운 변수가 벌어지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조국 프랑스가 위기에 처할 적마다 자원 입대해서 싸운 생텍쥐페리에게는 드골 측의 독선을 싫어할 권리가 있다. 어쨌거나 생텍쥐페리는 죽음으로써 정치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났고, 우리는 그가 비행기를 몰아 어린 왕자를 만나러 소행성을 향해 사라졌다고 믿으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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