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그대 떠나는 길 외로울까봐
'봄은 길게 눕는다'
그대 누울 자리에 목련 꽃잎 먼저
들어가 누웠다 나무 그림자 함께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새롭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 반복되지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가는 길이 외롭고 두렵고 힘들지만 동행들이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어볼 사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덜대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말을 걸 수 있고 조언을 구할 수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누구도 죽어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세계는 비밀의 세계이고 두려움의 세계이다. 물론 죽었다가 돌아와서 썼다고 하는 책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다 믿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죽음 뒤가 두려운 것은 혼자 가야한다는 것이다. 보내는 이도 혼자 보내서 안타깝다. 다시 만날 수 없는 먼길을 영영 보내는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슬픔 등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무도 손을 잡고 동행해 줄 사람이 없어서, 영영 떠나는 이도 한층 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가.
윤제림의 시인의 시 '봄은 길게 눕는다'를 읽어나가면 마지막 홀로인 순간이 와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내 곁에 있는 아끼는 사람을 홀로 보내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순간이 와도 '그래, 그대 무덤 안에 같이 누워 줄 목련 꽃잎이 있고, 나무 그림자가 있어' 하고 위안을 받을 것이다. 이 위안은 그냥 위안이 아니다. 동화적 상상력을 더 확대한다면, 삼라만상이 함께 하고 있다는 위안이다.
시적 화자의 넉넉하고 우주를 품는 마음이 시를 읽는 내내 들어온다.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게, 따뜻한 시선을 담아 '홀로 가는 당신에게 함께 할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준다. 주체 중심의 사고, 나를 중심으로 한 생각과 사유는 나를 외롭게 만든다.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해서 우주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그 우주 중의 일부분이, 나와 가까이 있는 것들이, 나의 손을 잡고,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커지겠는가.
윤제림의 시인의 시 '봄은 길게 눕는다'를 읽고 또 읽어나가다 보면 목련 꽃잎의 냄새가 난다. 찻물로 우린 목련차의 향기가 스며온다. 내 몸에 스며 넣고 싶은 시다.
봄은 길게 눕는다
일찌감치 구덩이를 파놓고
술과 담배 적당히 나눠 먹은 인부들이
공원묘지 차일 아래
벌러덩 누워 있다
한 사람만 몸이 달아서
긴 언덕길을 분주히 오르내릴 뿐
누워서 올 그대도
그대를 들고 산비탈을 올라올 사람들도
아직 보이지 않는데
그대 누울 자리에
목련꽃 이파리 서넛이
먼저
들어가 누웠다
나무 그림자도 길게 누웠다
-윤제림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2019, 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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