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코미디 이면에 담긴 한국사회라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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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실사화는 오늘날 한국영화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2025)에 이어 '좀비딸'(2025) 또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삼는데, 다분히 소재주의적인 성격을 갖는 이러한 기획은 창조성의 고갈, 또는 다양성이 허락되지 않는 한국 영화 산업의 우울한 현실을 반증한다.
이로써 '좀비딸'은 대중적 장르영화일수록 도리어 집단의 무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순전한 정치성을 조형해 낸다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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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실사화는 오늘날 한국영화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2025)에 이어 ‘좀비딸’(2025) 또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삼는데, 다분히 소재주의적인 성격을 갖는 이러한 기획은 창조성의 고갈, 또는 다양성이 허락되지 않는 한국 영화 산업의 우울한 현실을 반증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컨벤션을 열화된 형태로 이식하던 한국의 상업영화는 이젠 대중적 파급력의 동력을 서브 컬처에서 찾게 된 셈이다.

가족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소시민적 신파와 한동안 범람했던 좀비 아포칼립스,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코미디 등. 이것은 현대 한국 상업영화 일각의 전형성을 답습하고 있을 뿐 필감성이라는 감독의 독자적 관점이 드러난다고 할 결과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좀비딸’은 의외로 준수한 만듦새의 영화이긴 하다. 작가적 개성 대신 대중영화의 의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장인의 영화. 도입부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정환(조정석)의 동선을 따라가며 보게 되는 시골 어촌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극의 말미에 남아있는 감염자를 색출하고자 출동한 군인들이 밀어닥치면서 뒤집히고, 경연대회에 나가려던 딸 수아(최유리)가 연습하던 춤, 수아를 문 남자아이가 좀비 상태에서도 간단한 언어를 구사한 모습 등은 그녀가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게 되는 계기와 복선으로 재활용된다.
극도로 좀비를 혐오하게 된 연화(조여정)의 과거사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에서 내려치는 목검의 궤적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넘어올 때 안주를 젓가락으로 내려찍는 식으로 편집을 통해 운동방향이 연결되어 쾌감을 증대시킨다. 이처럼 먼저 제시된 극의 장치를 남김없이 챙기는 꼼꼼함과 영화적 기교는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 상당수가 잃은 게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 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경험의 정서적 리얼리티를 재현해 내는 영화의 구도에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아의 시점이 점점 포커스 아웃으로 흐려지는 순간은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잃었음을 알리는데, 극의 긴장은 수아를 지키려는 가족과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된 존재를 박멸의 대상으로 규정짓는 외부, 특수한 소수와 보편적인 다수의 비대칭적 대립에서 비롯된다. 좀비는 더 이상 공포의 원천이 아니다. 오히려 좀비를 색출하고 즉결 처형하는 군대로 형상화된 국가권력, 타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차별과 배제,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주변 인간들의 시선이야말로 일가족을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한다.

비인간화된 좀비가 인간성을 회복해 가는 반면, 정상에 속한 인간들이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얄궂은 역설. 그리고 다수 앞에서 자신들이 정상적인 존재임을 호소해야만 하는 소수자의 비애. 코미디이지만 ‘좀비딸’의 근간에 깔려있는 건 근현대사 이래 불편한 타자를 빨갱이로 낙인찍고 피해자 유가족을 모욕하는 등, 조리돌림으로 ‘상식’의 바깥에 놓인 이들을 마음껏 짓밟았던 한국사회의 집단적 야만성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과 경고이다. 이로써 ‘좀비딸’은 대중적 장르영화일수록 도리어 집단의 무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순전한 정치성을 조형해 낸다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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