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격차

낯선 기기 앞에서 한숨을 쉰다. 옆 사람 눈치도 본다. 편리한 세상. 디지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기기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기기는 좋아하는 음식, 노래, 옷 입는 스타일, 영화, 여행 장소까지 꿰차고 있다. 가끔은 나의 취향인지 기기 취향인지 혼란스럽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제프리 힌턴 명예교수가 "생성형 AI가 인류 지능을 넘어서 인간 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고,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모두 인공지능 백신을 맞았는데 아무도 똑똑해지지 않았다"고 우려한 것이 현실이 됐다.
손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만 열면 신문을 보고, 게임을 즐기고, 은행 거래도 하고, 기차표와 비행기표도 끊는다.
집 밖으로 나가도 마찬가지다. 식당에 가면 테이블마다 놓인 오더기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다. 부족한 반찬은 로봇이 가져다 준다. 커피숍에 가면 키오스크가 손님을 기다린다.
젊은층에게 편리한 디지털 세상은 고령층에겐 보이지 않는 벽처럼 두렵다. 키오스크 앞에서 발을 멈춰야 한다. 경조사비도 제대로 못보내니 사람 노릇도 안한 것처럼 만든다.
디지털 격차는 세대간 소통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4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일반 국민 100.0%)은 20대가 124.3%로 가장 높았다. 이어 30대 121.8%, 40대 113.8%, 19세 이하 109.8%인 반면 60대는 79.3%, 70대 이상 51.4%로 나타났다.
연령별 디지털정보화 역량수준은 20대가 139.85로 가장 높았고, 70대 이상은 26.85로 가장 낮았다.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 역시 20대가 122.1%로 가장 높은 반면 70대 이상은 20.8%로 가장 낮았다.
모바일 기기 보유율은 94.5%, 60대 이상도 91.8%가 기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젊은층은 과사용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었고, 고령층은 너무 어려워서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22.9%로 나타났다.
과의존은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신체·심리·사회적 문제를 겪는 상태를 의미한다.
연령대별로 보면 청소년(10~19세)이 42.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아동(3~9세)은 25.9%, 성인(20~59세)은 22.4%인 반면 60대는 11.9%로 집계됐다.
청소년의 과의존 비율이 40% 이상으로 나타나면서 국회 교육위원회는 이달 초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 제한을 법적으로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개정안이 다음 달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이르면 국내에서 내년 3월부터 수업 중 초·중·고교 학생들의 휴대전화 등 스마트 기기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될 전망이다.
청소년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제한한 선진국은 많다. 독일 헤센주는 지난달 학생들의 집중력, 사회적 상호작용, 정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학교에 '스마트폰 보호구역'을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덴마크는 올해 2월부터 전국 모든 학교와 방과후돌봄센터에서 휴대폰과 개인 태블릿 사용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8년부터 법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데 이어 올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디지털 휴식(학교 안에서 휴대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편리한 기기는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뺏었다. 우리 삶에서 물음표(?)와 느낌표(!)가 줄어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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