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 청년들이 내면 대신 외면에 관심 쏟은 이유
「근대라는 외장(소명출판·2025)」
현희운, 화장품 회사까지 차렸지만
근대적 미용, 위생·청결에 머물러
위생, ‘집단적 신체’ 관리로 확장
근대적 직업 가져도 한계 분명
日 제국주의라는 걸림돌에 좌절
한국사에서 근대는 1900~1945년이지만, 그중 35년이 일제강점기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에서 근대를 공백으로 놔둘 수는 없다. 신간 「근대라는 외장(2025년)」은 내면적 근대 대신 외적인 근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근대 식민지 청년들의 고민과 한계를 담아냈다.
![일제강점기 운동회 모습이 경성운동장 엽서에 담겨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30/thescoop1/20250730193334524ehjz.jpg)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는 시대적 구분인 동시에 하나의 사상처럼 작동한다. 일제강점기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적 목표이자 망국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처럼 여겨졌다…내면적 근대를 추구하는 길은 멀고 힘들지만, 외적인 근대로써 치장하는 것은 보다 쉽게 성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3쪽)."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는 이 책에서 근대 연극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현희운에게 주목했다. 현희운은 근대 미용의 흐름을 주도하고, 화장품 회사까지 만든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 경성 최초의 화장품 연구소를 표방했던 경성미용원 원장이었고, 여성잡지 「향흔」, 「부인」, 「위생과 화장」에 활발하게 글을 썼다.
하지만 당시 현희운이 주도하던 '화장' 담론은 사회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외장外裝과 화장은 일종의 교양으로만 남았다. 근대적인 의미의 몸 가꾸기는 그 출발점이 아름다움보다는 위생과 청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몸뿐만 아니라 거리와 도시의 청결로 확장됐다.
"청결이 근대의 명제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근대는 그 무엇보다도 깨끗하게 구획된 도시 그 자체로 상징되어 왔다. 따라서 청결은 그 자체로 근대적 표상으로 작용했다(74쪽)."
근대에서 위생 관념은 '집단적 신체'를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민감한 문제가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단적 신체를 강조하면, 우리를 일본의 국민으로 강제 편입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런 곤란한 상황은 1890년대 후반 생겨난 '운동회'에서도 벌어졌다. 조선에서도 1895년 이후 일본식 운동회가 개최되곤 했지만, 육상경기와 꽃놀이를 즐기는 평범한 행사에 불과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를 침략하려는 데 위기의식을 갖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1905~1910년 운동회는 전국적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0년 일제가 우리를 강제 병합한 다음부터 운동회의 종목은 군대와 같은 사열, 체조, 기마전이 주류가 됐다. 일본 제국주의에 어울리는 '국민의 신체'라는 목표에 부합하게 된 것이다.
근대 미용은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다시 변화한다. 일본은 전시체제로 돌입하자마자 가장 먼저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전쟁 물자로 활용하려는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내각이 조선인 특별 지원병 제도를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일본의 전쟁 정책과 함께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 사회를 휩쓸었던 것은 '총후부인'이라는 개념이었다… (일본) 제국이라는 거대한 가치에 (조선의) 각 가정이 복무해야 한다는 당위로 연결된다(148쪽)."
![[사진 | 뉴시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30/thescoop1/20250730193335772ooek.jpg)
가정 의료가 중요해지면서 상비약품의 중요성도 커졌다. 이런 약을 파는 제약회사도 모두 일본 회사였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다시 예민한 상황에 놓였다. 근대를 추구하고, 근대적 물품을 소비하면 할수록 일본 제국주의를 돕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김남천이 1939년 발표한 소설 「사랑의 수족관」을 통해서 식민지 청년의 한계를 포착한다. 토목기사라는 근대적 직업을 가진 주인공은 부산과 봉천(만주)을 오가던 조선 급행열차를 타고 만주로 간다.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얻어낸 가장 큰 이권은 만주 열차인데,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서 두 노선을 연결했기 때문이다. 근대 조선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일본의 군국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
"식민지의 직업인으로서 직분에 대한 그의 충실성은, 제국의 심상지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가 자기 직업에 충실할수록 제국주의적 가치관에 따른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212쪽)."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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