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발걸음 멈추자, 마을 숨결도 멎었다

문정민 기자 2025. 7. 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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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학교 사이, 끊긴 배움의 다리]
(2)학생 웃음소리 사라진 마을

밀양 내이동 쇠퇴한 원도심
공예·베이킹 등 마을배움터 운영
방학·주말마다 학생들로 골목 활기
예산 끊기며 수업 중단, 공간도 철수
“지금은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요”

합천 대양면 승비산 자락 고립된 마을
체육관·복지회관 등 공동 배움터 활용
정적 흐르던 마을에 학생들이 오가며 변화
공동체 속에서 관계·감수성 키운 시간
“4년 쌓은 관계, 단절되니 되살리기 어려워”
'미래교육지구(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이 올해 사실상 멈추면서, 학생들 웃음소리와 마을 숨결이 함께 사라졌다. 이 사업은 단순한 교육 지원이 아니라 학생들이 마을에서 배우고 자라는 기반이자, 지역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힘이었다. 하지만 예산 전면 삭감으로 그 연결은 끊겼다. 특히 밀양과 합천처럼 소멸 위기 지역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이 사업이 보인 변화는 무엇이었고, 그것이 사라진 지금 마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밀양 내이동 마을배움터에서 친환경 비누 만들기 수업에 참여 중인 학생들. 손으로 직접 만들며 배우는 활동이 아이들의 일상에 활력을 더했다. /김경환 씨

◇"골목에 고양이만 남았어요" = 밀양시 내이동은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적막감이 감도는 동네다. 원도심인 이곳은 밀양대학교가 이전한 뒤 인구 유출이 가속화됐다. 상권과 문화 기반이 쇠퇴했고, 마을은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지난해 한동안 조용했던 골목에 다시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되살아났다. 그 중심엔 '미래교육지구 사업'이 있었다. 사업은 지역 주민이 강사가 돼 학생들에게 베이킹·공예·환경 체험 등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는 구조였다.

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김경환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2022년부터 마을강사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마을배움터에서 가죽공예와 친환경 비누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인근 골목을 누비며 놀았어요. 지난해만 해도 그 풍경이 이 마을의 일상이었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하루에 15~20명씩, 한 달 4회가량 총 20차례 수업을 운영하며 400여 명의 학생과 함께했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주말과 방학 기간을 활용해 진행됐다.

베이커리 강사 권준영 씨도 지난해 마을배움터를 운영하며 학생들과 제과제빵 수업을 함께했다. 반죽을 치고, 빵을 굽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처음엔 사람 하나 안 보이다가도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 20여 명이 골목을 오가며 북적였죠. 그렇게 활기를 불어넣는 게 미래교육지구 사업입니다. 학생들은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신청하고…. 수업을 계기로 마을이 살아있다고 느꼈어요. 이 사업이 없었다면 학생들은 주말에 잠만 자거나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었을 겁니다."

미래교육지구는 지역 주민 참여와 공동체 활동을 이끌어내는 기반이기도 했다. 지역에 살고, 학생을 키우며, 마을을 잘 아는 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살이'의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연결이 완전히 단절됐다. 올해 예산이 전면 중단되며 수업 역시 사라졌다. 김 씨는 마을배움터를 위해 준비했던 공방 공간을 7월을 끝으로 철수하게 됐다. "지금은 학생들 갈 곳이 없어요. 학교에서도 국·영·수만 하고, 주말에도 활동하고 배울 공간이 없어요."

권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이 골목에는 정말 고양이만 남았어요."
미래교육지구 사업이 중단되며 문을 닫은 밀양 내이동의 공예 공방.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은 이제 조용히 텅 비어 있다. /김경환 씨

◇"15년 만에 학생들 목소리 들었는데…" = 합천 대양면은 승비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다. 외부와 연결이 쉽지 않아, 낮에도 사람 소리 하나 없이 숨죽은 듯 고요하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아이들 소리만 들리게 해달라." 한 마을 이장이 했던 이 말은 그곳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1년부터 정적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발걸음이 곳곳을 오가며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 변화를 이끈 건, 귀농인 이경채 씨가 운영한 '대양승비마을배움터'였다. 마을의 고립과 단절을 직접 체감하던 그는 우연히 참여한 마을 강사 봉사활동을 계기로 배움터를 열었다. 초등학교 체육관, 복지회관, 마을센터 등 마을의 다양한 공간이 하나의 공동 배움터로 변모했다.

"당시 마을에는 학생이 한두 명뿐이었어요. '무슨 마을배움터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죠."

하지만 정원 12명을 훌쩍 넘는 24명이 신청했다. 그중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17명이 참여했다.
이계마을 어르신의 마을 이야기를 경청하는 학생들. 세대가 어우러져 지역의 역사와 삶을 함께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경채 씨

한지 목공예, 풍물놀이, 요리, 요가 등 다채로운 수업 속에서 학생들은 골목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뛰어놀았다.

"어르신들이 문 앞에 나와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셨어요. '학생들 웃음소리를 15년 만에 들었다'며 감격하는 주민도 있었죠."

면 단위 지역에서는 읍내로 나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기 마을 안에서 놀고 배우는 경험은 더욱 소중했다. 마을이 곧 놀이터이자 배움의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해마다 배움터로 다시 왔고, 부모들도 수업을 기다렸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관계'를 배웠다. 동네 형·동생이 생기고, 처음 만난 친구에게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6학년 형을 '야'라고 부를 정도로 관계 감각이 무뎌져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이름을 부르고 존중하는 법부터 가르쳤죠. 청소년기에 관계성과 감수성을 키우지 않으면, 나중엔 고치기 어렵습니다."
마을 어르신에게 정성껏 절을 올리며 인사하는 학생. /이경채 씨

이 씨가 4년간 운영한 배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곳에서 더 이상 아이들을 만날 수 없게 됐다.

새로 지은 체육관엔 거미줄이 쳐 있고, 복지회관은 다시 조용해졌다. 학생들 웃음소리 하나로 마을이 살아났던 풍경은 다시 멈췄다.

"4년간 쌓아온 학생들과 어르신들의 관계, 마을의 신뢰, 배움터에 대한 기대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걸 다시 만들려면 10년은 걸릴지도 몰라요. 학생들은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정책에서 쉽게 배제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라 투표권을 갖기 전까지 어른들은 무엇을 남겨줘야 할까요?"

/문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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