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야구가 말해주는 것 [김은식의 이사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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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야구라는 게 늘 야구다.
나도 한때는 야구 종종 봤었지, 하는 정도의 거리에서 보자면 우승팀이 바뀌고 뛰는 선수가 다를 뿐 야구라는 경기의 모양은 같지 않나 싶다.
오심이 줄고 선수나 감독이 심판과 맞설 필요가 없어졌으며, 야구팬들이 기억하는 심판의 이름이 드물어진 것이 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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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 작가
얼핏 보면 야구라는 게 늘 야구다. 나도 한때는 야구 종종 봤었지, 하는 정도의 거리에서 보자면 우승팀이 바뀌고 뛰는 선수가 다를 뿐 야구라는 경기의 모양은 같지 않나 싶다. 하지만 사실 야구는 늘 바뀌면서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하고, 반대로 향후 사회의 변화를 시사하기도 한다.
예컨대 10여년 전만 해도 야구는 꽤 거칠었다. 투수가 타자의 몸을 겨누어 강속구를 던지는 일이 빈번했고, 홈에서 주자를 막아내려는 포수와 그 포수를 쓰러뜨리고 1점을 빼앗아내려는 주자가 공과는 상관없이 격돌했다. 그리고 그런 충돌의 불꽃이 쌓여 있던 마른 감정으로 옮겨붙으면 종종 ‘벤치클리어링’을 빙자해 주먹을 날리고 목을 조르는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타자를 공으로 위협해 반걸음 물러나게 하는 것이 투수의 생존 전략으로 통하고 적개심을 드러낸 상대 타자에게 빈볼을 던진 것은 팀을 위한 행동으로 존중되었으며, 1점을 위해 부상을 무릅쓰는 것은 선수의 본분으로 칭송받았다.
숱한 선수들을 골절과 탈구, 뇌진탕과 트라우마로 떠나 보낸 그런 살풍경이 좀 잦아든 것은 몇가지 제도 덕분이었다. 2014년부터는 직구가 타자의 헬멧을 스치기만 해도 투수를 퇴장시키도록 했고 2016년부터는 포수가 공 없이 홈을 막아서면 주자의 득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실력이 모자라면 물어뜯는 근성이라도 보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빨을 드러내기보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를 악물기를 바라는 더 많은 이들에게는 흡족한 변화였다.
그 무렵 시작된 또 하나의 변화가 심판의 역할을 기계와 나눈 것이다. 2014년 후반기부터 제한적으로나마 비디오 판독 내용을 참고해 판정을 번복할 수 있게 한 뒤 조금씩 범위를 늘려 작년부터는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이 주심을 대체한다. 오심이 줄고 선수나 감독이 심판과 맞설 필요가 없어졌으며, 야구팬들이 기억하는 심판의 이름이 드물어진 것이 그 결과다.
물론 ‘이것은 더 이상 야구가 아니다’라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꽤 있다. 한국을 따라 에이비에스 도입을 검토 중인 미국에서는 ‘심판이 없는 경기장에서는 자신도 공을 던지지 않겠다’는 투수도 있다고 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오래된 격언도 새삼 인용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 같은 말의 의미도 달라진다. 불가피한 오심은 경기의 일부지만 치울 수 있는데도 방치한 오심은 걸림돌이다.
‘심판의 장난질’이라는 화두가 던져지면 야구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군대 축구 이야기’ 못지않은 장황하고 기상천외한 경험담을 쏟아낸다. 심판의 아들인 어느 야구인은 ‘큰 대회를 치를 때마다 가구와 집기들이 교체됐다’고 고백한다. 심판의 권위는 돈과도 교환된 사례가 있고, 애교심이나 애국심 같은 관념의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기도 했다. 물론 얼마나 많은 판정이 왜곡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왜곡된 판정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실재하는 가능성에서 비롯된 의심과 좌절과 분노는 늘 야구장 한 편에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었다.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것보다 인간적인 것에 끌리는 것이 스포츠팬들의 정서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선 인간의 경쟁만 온전히 즐기기 위해 더더욱 기계적인 규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요즘 야구의 변화는 반가울 것이다. 언젠가는 입학과 취업과 병역, 재판 따위 야구장 밖의 삶도 그랬으면 하는 기대를 품은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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