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서한’의 외교적 결례?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7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몇가지가 눈에 걸렸다. 가장 눈에 걸린 건 고유명사도 아닌데 명사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시한 부분이다. 외교적 결례로 보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활용하는 에스엔에스 글쓰기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로마자 표기를 ‘Lee Jae-myung’으로 쓴 것은 분명한 외교적 결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본인과 김혜경 여사의 로마자는 각각 ‘Lee Jae Myung’과 ‘Kim Hea Kyung’으로 표기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편지를 공개하기 전 새로운 한국 대통령의 로마자 표기를 확인하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외교적 결례라고 한 부분은 이재명 대통령 이름 표기, 즉 두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쓴 것이다. 붙임표는 한국어에서 자주 쓰는 문장 부호가 아니기 때문에 있고 없고가 매우 사소한 차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짧고 단순한 붙임표에는 여러 뜻과 의도가 담기곤 한다. 따라서 이는 매우 큰 차이를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붙임표는 처음부터 글자 또는 단어를 연결하고 단어끼리의 관련성을 보여 주기 위해 쓰였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개발 뒤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행과 활자의 수가 한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단어를 잘라서 넣는 경우가 생겼다. 이럴 때 단어 첫 부분 뒤에 붙임표를 놓고 다음 줄에 해당 단어의 다음 글자를 이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곤 했다. 오늘날 유럽 모든 언어는 이런 연결 기능으로 붙임표를 사용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붙임표 연결 기능이 훨씬 다양해졌다. 예를 들면 영어에서는 서로 관계 있는 두 단어를 연결시켜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 성과 이름에 적용해서 붙임표를 붙이면 서로 관련 있는 하나의 단어로 여겨진다. 최근 언론에 자주 나오는 미국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의 사례는 흥미롭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그의 성은 스페인어인 ‘Ocasio-Cortez’인데 두 단어가 붙임표로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 성인 ‘Ocasio’를 어머니 성인 ‘Cortez’ 앞에 놓고 이걸 연결해 이름 뒤에 붙였다. 영어에서 아버지 성을 가운데 이름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붙임표를 써서 두개가 하나의 성으로 자연스럽게 여겨질 수 있게 한 것이다.
반면 한국인 로마자 표기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해 원래 발음과 성명의 구성을 가급적 잘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붙임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뭘까.
이에 대해 한국 여권 로마자 표기 지침은 “영문 이름은 붙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쓰는 것을 허용함”으로 되어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이름은 ‘Jaemyung’으로 표기하는 게 원칙이고 ‘Jae-myung’도 허용이 된다. 이름 사이 두 음절 사이에 한 칸 띄우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지침의 배경은 뭘까. 한국은 그동안 로마자 표기법을 몇차례 바꿨는데, 이름의 경우 줄곧 붙임표 없이 쓰는 걸 권하면서도 붙임표 사용을 인정하고 허용해왔다. 붙임표가 없는 이름은 분명히 한 단어라 오해의 여지가 없지만 경우에 따라 길고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특히 두번째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이름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음절 사이 붙임표를 넣으면 덜 복잡해 보이고 읽기에도 더 쉽다. 그렇게 생각하면 각 음절 사이에 한 칸을 띄우고 두번째 음절을 시작할 때 대문자 사용은 두개의 단어로 오해할 여지가 있어 지침에서 제외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름 표기는 개인 정체성 또는 취향과도 관련이 있어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한국인이었다면 이름에 오해가 없도록, 그리고 이름의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붙임표 방식을 선택했을 듯하다. 그러나 새 대통령의 로마자 표기 방침을 따르지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결례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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