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같던 40년 법조인생…'흙작가'로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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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으로서 제 삶은 마라톤 선수와도 같았습니다. 긴 레이스를 열심히 달려 금메달(검찰총장)을 땄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스타디움(로펌)을 계속 뛰고 있더군요. 변호사 생활이라는 게 결국 과거 영광의 찌꺼기를 이용하겠다는 것이잖아요. 이런 삶으로 인생을 마감해도 되나 의문이 들었죠."
그렇게 그는 흙으로 만들어 구운 작품인 '테라코타' 50점으로 2021년 가을 첫 전시회를 열었다.
법조인 김준규에서 흙작가 김준규로의 변신을 알리는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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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의 삶 벗어나려 로펌 나와
흙의 따뜻함·치유 매력에 빠져
대학시절 아내와 찍은 사진 등
작품 100여점 빚으며 '구슬땀'
"충실하게 내 삶 즐기니 보람차
이젠 진짜 예술가 인정받고파"

"법조인으로서 제 삶은 마라톤 선수와도 같았습니다. 긴 레이스를 열심히 달려 금메달(검찰총장)을 땄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스타디움(로펌)을 계속 뛰고 있더군요. 변호사 생활이라는 게 결국 과거 영광의 찌꺼기를 이용하겠다는 것이잖아요. 이런 삶으로 인생을 마감해도 되나 의문이 들었죠."
2019년 겨울, 65세를 앞둔 김준규 전 검찰총장(70)의 뇌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대표 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화우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같은 해 4월 그만뒀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했다.
경기고 1학년 시절 조소대회에서 1등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홍익대 미대가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대회였다. 2·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1학년생이 우승하니 학교 안팎이 떠들썩했다. 그는 미대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그해 말 받은 처참한 성적표는 그의 인생을 갈랐다.
"55명 가운데 47등을 했어요. 공부대신 조소에만 공을 들였어도 중간은 할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죠.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미대 진학이라는 꿈을 버리고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검사로 30년, 변호사로 10년을 일했다. 법조인으로 살았던 삶에 후회는 없다. 검사로서 최고 자리에 올랐고, 남의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절제하면서 바르게 살았다고 자평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삶은 졸렌(sollen·독일어로 '당위')을 완벽히 수행한 것이었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달렸다. 제2의 삶은 자인(sein·독일어로 '존재')으로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유독 흙이 좋았다. 흙을 만지는 감촉이 좋았고 흙으로 만든 작품을 봤을 때 따뜻함과 치유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흙으로 만들어 구운 작품인 '테라코타' 50점으로 2021년 가을 첫 전시회를 열었다. 법조인 김준규에서 흙작가 김준규로의 변신을 알리는 전시회였다. 많은 사람이 흔치 않은 변신에 찬사를 보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 작업실에서 만난 김 작가는 내년 두 번째 전시회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선 국내 최초로 테라코타 작품만으로 100점 이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테라코타만 100점 이상 만든 작가는 없어요. 대개 테라코타를 만들다가 다른 분야로 넘어가거든요. 두 번째 전시회에선 단순히 변신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온전히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삶, 죽음, 구원'이다. 요즘은 대학 졸업식 때 아내와 찍은 사진을 흙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종교적으로 그에게 구원을 준 예수를 주제로 한 작품도 만들 생각이다.
여전히 가장 애정을 가진 작품은 첫 자소상인 '메멘토 모리'(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다. 이 작품은 원래 실패작이었다. "흙으로 만들어 굳혀놓고 보니 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덧작업을 했더니 마르면서 갈라지더군요. 하루이틀 두고 보니 내가 죽으면 육신이 갈라지고 썩으면서 저렇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회 이후 그의 인생 목표가 궁금했다. "두 번째 삶의 보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 따졌을 때 흙작가로의 변신은 실패입니다. 다만 이걸로 돈을 벌려는 것은 아니니까요. 발달장애 아이들한테 흙 공예를 가르치거나, 암 말기 노인들과 자소상 만들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검찰 등 고위 공직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돈 벌기가 매우 어려운데, 돈을 벌 수 있는데 안 벌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높은 자리를 했으면 자릿값을 해야 합니다. 돈까지 더 벌려고 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원로가 아닌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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