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민생 힘든데"…정치권 현수막 경쟁 '눈살'
옥외법 개정에도 설치·철거 지연
처벌 대부분 계도…실효성 논란
정치권 법 준수·자정 노력 필요

"민생 경제가 이렇게 힘든데, 현수막으로 정쟁이나 하고 있네요."
30일 광주 북구 중흥동 한 건물 앞, 나무 사이로 정당 현수막들이 줄지어 걸려 눈길을 끌었다. '아무리 찍어도 안 바뀔 때', '내란외환수괴 엄벌'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날 선 정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시민 A씨(38)는 이를 보고 한숨만 연신 내쉬었다. 그는 "수해 복구나 폭염 대책 같은 민생 문제는 뒷전이고, 아직도 이상한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시민을 무시하는 행태로밖에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당 현수막이 도심 곳곳에 난립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1분기까지 광주에서 적발된 정당 현수막 관련 옥외광고물법 위반 사례는 3천840건, 전남 3천776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접수된 관련 민원도 광주 1천647건, 전남 361건 등 총 2천8건으로 집계됐다.
현행법상 정당은 정치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 요건을 갖추면 현수막 게시가 가능하다. 정당 활동 자유를 폭 넓게 보장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시민에게 유익한 정책 홍보나 공익적 메시지보다는 경쟁 정당을 향한 비방성 문구가 담긴 경우가 많아 제도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고자 지난해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을 개정해 정당 현수막의 설치 수량, 게시 높이, 게시 기간 등을 새롭게 규정했다. 현수막 철거도 정당이 직접 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대부분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현장 단속 공백을 틈타 현수막을 장기간 게시하거나, 철거를 미루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 광주 적발 사례 중 62%(2천378건), 전남은 63.2%(2천388건)가 '설치 기간 위반'에 해당했다. 결국 현장에서 현수막을 철거하는 업무는 각 자치구 공무원들이 맡게 된다.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단속과 처벌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광주 5개 자치구 가운데 과태료를 부과한 곳은 광산구가 유일하다. 광산구는 지난달까지 위반 사례 522건 중 87건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마저도 수차례 자정 요청 이후에야 이뤄진 조치였다. 다른 지자체는 대부분 계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당 현수막이 지나치게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옥외광고물법 제8조 '적용 배제' 조항에 따라 정당의 정치 활동 목적 현수막은 일반 광고물 규제에서 제외된다. 정당법 또한 통상적인 정당 활동은 보장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별도 신고나 허가 없이 게시가 가능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되 정당과 정치인의 자율적 자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과 한 교수는 "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도심 미관과 안전을 해칠 정도라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지정 게시대에만 현수막을 설치하도록 하거나 설치 개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불법 광고물 합동점검반을 지속 운영하며 현장 단속과 계도 활동을 병행할 계획"이라며 "처벌 강화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