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럽상의 “한국 철수는 최악 가정일 뿐…노란봉투법 입장, 경총서 의뢰”

김남일 기자 2025. 7. 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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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참고자료 공유…공식 요청 안 해”
미국상의는 ‘철수’ 언급 없이 우려 표명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반대 진영의 ‘선두’에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CK)가 등장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노조 활동 등 노동권 보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럽계 기업단체가 ‘한국 시장 철수’(28일)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국회 입법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은 반색했다. 같은 날 나온 한국경영자총협회 입장보다 앞세워 쓰며 ‘노란봉투법 포비아’를 키우려 했다.

당장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프랑스 회사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것이냐’는 비정규직 노동자 질문에 ‘한국에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오히려 이득을 보기 때문’이라는 만화 ‘송곳’의 명대사가 소환된 것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일 유럽연합(EU)이 우리나라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주한유럽상공회의소와 대화하겠다”고 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쪽은 노란봉투법의 ‘사용자’ 정의 확대에는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가정을 전제로 한 ‘철수’ 표현이 지나치게 부각됐다고 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관계자는 30일 “‘철수’ 표현은 만약의 만약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예시로 든 것인데 그 부분이 보도에서 강조됐다”고 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쪽은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가졌다기보다는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등과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입장을 내게 됐다”고 했다. “9월에 발간하는 백서에 ‘사용자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넣기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법안이 급물살을 타자 ‘백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 먼저 입장을 밝혀줄 수 있느냐’는 쪽으로 논의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경총 쪽은 “경영자 네트워킹이 있기 때문에 참고자료 공유를 한 것이다. 실무선에서 공식 요청은 없었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정당 당원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 후퇴 저지 및 신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해마다 회원사들이 제기한 산업별 규제 이슈를 100개 안팎으로 선정해 대한민국 정부에 건의하고, 진척 상황을 백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백서에서는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이 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보다 훨씬 강한 제재 규정을 두고 있다. 법률 유지가 불가피하다면 처벌 요건 명확화를 통해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 정도에 비례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령체계 정비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쪽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회원사 입장이 통일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조·유통 등 업종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회원사 가운데 사용자 정의 부분이 가장 모호하다는 입장이 있다”고 전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한국에 진출한 유럽계 기업 400여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주요 기업은 이케아, 베엠베(BMW), 메르세데스-벤츠, 필립스, 로레알코리아, 루프트한자, 하이네켄, 아이엔지(ING은행) 등이다. 여기에 김앤장·태평양·광장·화우, 삼정·삼일 등 국내 대형 로펌·회계법인 등도 회원사다. 이사진에는 김앤장과 삼일 쪽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2019년 유럽연합(EU)은 한국이 노동권 관련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며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과 유럽연합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효과적 인정 등의 원칙을 존중·증진·실현’하기로 약속했는데, 한국이 이를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국회의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 등을 들어 대응했다.

한편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30일 노란봉투법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입장을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철수 가능성’ 언급은 없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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