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부산은 왜 ‘가덕도 이슈’에 분노하는가 [비즈니스 포커스]

20년 이상 끌어온 부산광역시의 숙원사업 가덕도 공항 건설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지조성사업 우선협상대상 컨소시엄의 주관사였던 현대건설이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면서다. 4차례 유찰 끝에 수의계약을 맺을 차례였던 턴키(TK) 시공사업단이 흔들리자 2029년 말로 예정됐던 개항 계획은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건설업계에선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었다는 평가다. 조기 개항 계획은 부산시는 물론 중앙 정·재계까지 앞장서 유치를 추진했던 ‘2030 부산 엑스포’ 행사에 맞춘 것이었다.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고 정권이 바뀌자 기존 계획에 대한 재검토 논의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부산 민심은 들끓고 있다. 단순 ‘개발 호재’가 무산 또는 지체되는 데 따른 실망감의 표시가 아니다. 포화상태인 김해공항과 이를 이용해야 하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의 오랜 불만, 그리고 인구와 일자리가 동반 감소하며 침체하고 있는 지역경제에 대한 박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20년 끌어온 신공항, 마음 급한 부산

가덕도 신공항 사업 관련 기사에는 화가 난 부산시민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조기 착공 및 개항이 사실상 무산된데 대해 성토하는 분위기다.
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신공항 조성 계획이 표류하면서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 부산시민들의 불편이 그만큼 큰 데다 자칫 일정이 늘어졌다가 이미 한 번 무산됐던 사업 자체가 또다시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 또한 존재한다.
영남 지역 내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2002년 4월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CA129편 항공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다가 승객과 승무원 130명이 숨진 참사로 인해 본격화됐다. 당시 에어차이나 항공기는 공항 북쪽에 자리한 돗대산과 충돌했는데 김해공항은 돗대산과 신어산의 위치로 인해 강한 남풍이 불 때 기체가 활주로 북쪽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지리적 약점이 있다.
신공항 건설 필요성이 불거지며 부산 강서구 소재 가덕도와 경북 밀양 하남읍이 점차 후보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7년 건설교통부가 ‘동남권 신공항 사업’ 추진계획을 밝힌 이후로 가덕도를 밀던 부울경(PK) 권역과 밀양을 밀던 TK 권역 사이에는 본격적인 신경전이 이어졌다. 새 공항은 수도권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영남 권역의 관문으로서 교통, 물류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이후 대선마다 ‘동남권 신공항’ 공약은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 됐다. 이미 인구·일자리 유출로 인한 지방의 경기침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상황에서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혁신도시’와 함께 지역경제를 살리는 균형발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양 지역 간 갈등은 결국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2차례에 걸친 사전타당성 검토를 진행한 끝에 마무리되는 듯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6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ADPi)의 용역 결과 가덕도와 밀양 모두 사업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을 확정했다.
그런데 곧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이 이어지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까지만 해도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가덕도 신공항 유치’ 공약을 내걸면서 힘을 받은 사업 재추진 계획은 2021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확정됐다.
정권 따라 오락가락, 시민만 피해 봐

이 같은 상태에서 여행객이 급속히 늘며 김해공항은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 한국공항공사 집계에 따르면 김해공항 이용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주춤하다 최근 다시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2014년 김해공항 여객 수(출발·도착 합산)는 1037만8866명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한 뒤 2017년 1706만461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 1575만 명 수준까지 회복됐다. 월별 여객도 100만 명을 웃돈다.
지난해 국제선 청사 확장으로 여객 수용능력이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김해공항에는 유럽, 미주 등 장거리 직항 노선도 없다. 또 인근에 인구밀집지역이 위치해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운항 제한시간(Curfew Time)이 걸려 있어 이용이 더욱 불편하다.
한 부산시민은 “김해공항은 언제나 도떼기시장”이라며 “부산시민들은 엑스포 유치 실패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고 당장 공항이 작아 겪는 불편이 해소됐으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가덕도 신공항 착공이 미뤄진다는 소식에 중장년층 사이에는 ‘살아생전에 인천이 아닌 부산에서 유럽 직항을 탈 수 있겠냐’는 반응”이라고 덧붙였다.
신공항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기대감도 크다. 조선 등 오랜 기반 산업 침체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부산에선 청년층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 부산시민들은 자기 지역에 대해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인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대한제강 자회사인 YK스틸이 사하구 소재 공장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인해 충남 당진으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되면서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아파트 좀 그만 지으라”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2021년 제정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는 “수도권의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을 활성화하는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건설 기본 방향이 명시되기도 했다. 2023년 말 확정고시된 사업 기본계획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가덕도로 접근하는 4차선 도로는 물론 복선철도를 건설해 24시간 운영하는 동남권 관문 공항인 가덕도 신공항과 주변 부산신항과 철도 및 도로노선을 연결하는 일명 ‘복합·쿼트로포트’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2023년 11월부터 12월까지 18세 이상 부산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으로 예상되는 기대효과로는 남부권 경제성장(33.8%)이 1위, 공항 접근성 개선이 2위를 차지했다. 비즈니스·관광·활성화(12.6%)와 일자리 창출(9.8%)이 각각 3, 4위로 뒤를 이었다.
사업 정상화해도 조기 개항 무리

이처럼 다른 지역과의 경쟁, 사업 무산을 거쳐 부활한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현대건설 대신 같은 시공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대우건설이 새로운 주관사로 유력하게 부상하며 정상화 기미가 보이고 있다. 대우건설은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외에서 다양한 대규모 항만, 교량 등 해상 공사 실적을 보유한 흔치 않은 건설사로 꼽힌다. 지난해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이 출범해 보상을 시작하는 등 사업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어느 회사가 사업을 주도하든 계획보다 지연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설업계에선 부지조성사업 입찰공고를 낼 당시 84개월로 잡았던 공사기한이 애초에 무리였다는 평가다. 현대건설은 공사기한 연장(108개월)과 공사비 인상을 국토부에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가덕도 해안 연약지반을 안정화하고 방파제를 세우는데 추가 기간이 더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길이 3500m에 달하는 신공항 활주로는 기본계획상 일부는 가덕도 지상 암반 위, 일부는 해상 매립지에 위치하게 돼 있다. 매립지에 침하가 생기면 암반 위 땅과 매립지 간 단차가 발생하는 ‘부등침하’ 현상이 생길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3년 내놓은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보고서’를 통해 가덕도 신공항 사업 총 사업비가 2020년 12월 사업계획 당시 13조7600억원에서 16조6400억원으로 3조원 가까이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 전문가는 “시공사가 빠듯한 공기를 지키려 무리하게 공사하다가 사고가 나서 다 ‘뒤집어 쓴’ 사례가 그동안 한두 건이겠나”라며 “현대건설이 기본설계 등에 투자한 600억원을 매몰비용으로 포기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나라에서 계약은 84개월로 해놓고 구두로 나중에 공기를 늘려준다는 약속을 할 수야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또 상황이 달라질 텐데 어떻게 믿겠나”라며 “결국 누가 공사를 맡든 공기는 연장되고 공사비도 인상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2026년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PK 민심’의 향배가 중요한 정치권에서 사업을 무산시키기 어려울 전망이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특별법에 따라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도 면제받았다.
현대건설을 겨누던 지역 정치권의 화살은 어느새 상대편을 향하며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시정평가대안특별위원회는 7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형준 시장의 무책임한 행정이 착공 지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도 이에 앞선 6월 13일 기획재정부의 부지조성공사 예산삭감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 홀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연내 착공이 어렵다고 보고 올해 가덕도 예산 9640억원의 절반가량을 삭감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공사기한 연장, 공사비 인상 등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로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과 함께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덕도신공항건설공사 관계자는 “이미 가덕도 토지주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당장 착공 시기는 불명확하나 특별법으로 규정된 사업인 만큼 빠른 착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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