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야구만 봤는데" 운동부 '아웃'…공부에 밀려 퇴장 당하는 꿈
[편집자주] 운동부가 사라지고 있다. 학생 수가 줄다 보니 야구부와 축구부는 언감생심이다. 꿈을 키우기 위해 전학하고 멀리 통학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운동부를 책임지는 교육부와 문화체육부는 손발이 맞지 않는다. 올해 여름이 운동을 꿈꾸는 일부 학생들에겐 운동장에서 뛰는 마지막 여름일 수 있다. 그들이 내년 여름에도 운동장에서 꿈을 펼 수 있는 대안을 살펴봤다.
-해체 위기 처한 부천고 야구부

지난 18일 한여름 뙤약볕이 쏟아지는 낮 1시, 부천고 야구부 학생 29명이 버스에 올랐다. 30분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시립 까치울 야구장. 지난해만 해도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했지만 지금은 노후 건물 공사로 운동장을 쓸 수 없다. 비 오는 날 배팅 연습을 했던 학교 실내 연습장 일부는 창고로 대체됐다. 연습장이 좁아져 올해 장마철엔 5명씩 교대로 연습했다.
◆"야구에 인생 걸었는데"… 과학고 전환에 해체 수순
올해 여름이 부천고 야구부의 마지막 여름일 수도 있다. 학교가 2027년 과학고 전환을 통보하면서다. 과학고로 전환되면 운동부 인원이 학년당 5명으로 제한된다. 최소 18명의 엔트리를 채울 수 없어 야구부는 사라질 운명이다. 부원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
야구부 주장 윤유노군(18)은 고교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직격탄을 맞았다. 프로야구 드래프트 지명을 위해선 기량을 보여줄 무대가 절실하지만, 과학고 전환 통보 이후 후배 5명이 떠나면서 전력이 크게 흔들렸다.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1회전 탈락이 계속됐고, 팀 성적이 부진해 전국 대회 출전 기회도 줄었다.

윤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에 인생을 걸었다. 아마추어 여자 야구 선수였던 어머니 신혜숙씨(46)는 아들을 위해 야구를 접고 택배일을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졌다. 신씨는 "유노가 야구를 아주 하기 싫다고 할 때까지는 도울 것"이라고 했다.
윤군의 후배 2학년 강동훈군(17)은 지난해 11월 부천고에 전학 왔다가 3개월 만에 과학고 전환 소식을 들었다. 부천에 집을 구해 자취를 시작한 직후였다. 강군은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이 올해 하나둘씩 떠났다"며 "다시 전학 가야 하나 싶어 솔직히 두렵다"고 했다.
운동부 학생선수들에게 운동은 학창 시절의 전부다. 윤군에게도 지난 9년은 야구뿐이었다. 학원 대신 훈련장, 수학여행 대신 원정 경기였다. 담담하던 윤군이 끝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야구만, 저는 딱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9년 전으로 돌아가도 저는 다시 야구를 할 거예요. 후배들이 끝까지 야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김희상 감독은 신입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훈련이 없는 날이면 중학교 리그 대회를 찾아가거나 직접 학교를 방문해 선수를 물색한다. 당초 약속한 신입생 5명이 안 오겠다고 하면서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혹시 지도자마저 떠나면 어쩌나' 하는 학생들의 걱정과 달리 김 감독은 "애들이 있는 한 나도 있어야 한다"며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고 야구부는 다음 달 10일 제53회 봉황대기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해 배재고와 맞붙는다. 올 여름 이 경기가 윤군에게도, 부천고 야구부에도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 경기를 앞두고 막바지 훈련에 한창이다. 윤군은 배트를 움켜쥐고 다음 스윙을 준비했다.


우리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의 학교운동부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다른 종목 운동부는 더 심각하다. 기초 종목은 역사와 전통을 지녔음에도 해체 수순을 밟고 있고, 구기 종목은 경기를 뛸 수 있는 최소 선수 인원을 못 채워 해체하기 일쑤다. 저출산 여파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와 학교 측의 운동부 지속 의지 부족이 주요인이다. 정부와 스포츠 관련 협회·단체들의 관심 부족도 학교운동부 위기를 심화시킨다.
29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5281개에 달하던 운동부 운영 학교는 지난해 3898개로 줄었다. 12년간 1200개 감소했다. 1년에 100개씩 사라진 셈이다.
운동부 해체의 가장 큰 원인은 학령인구 감소다. 특히 야구, 축구 등 단체운동은 경기를 뛸 선수를 채우기가 어렵다. 운동부 해체가 주로 인구 감소 지역에서 두드러진 이유다. 학교나 학부모의 관심도 많이 떨어졌다. 학생선수는 2012년 7만1518명에서 지난해 4만4723명으로 37.5%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율 25.5%보다 감소폭이 크다.
구기 종목은 일정 규모 학생선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운동부를 유지할 수 없다. 인구 감소 지역은 한계가 명확하다. 전남 보성군 벌교상업고 남자배구부는 한때 선수가 많아서 '벌떼'라고 불렸지만 전국체전 기준 배구 경기 엔트리 12명을 채우지 못해 2022년 문을 닫았다. 해체 직전 김주영(한국전력)을 비롯해 남은 5명은 전학을 가야 했다. 2010년대 전후로 전남지역 초·중학교 남자배구부는 고흥 녹동초, 순천 대석초, 순천 팔마중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녹동초도 3년간 선수를 구하지 못해 올해 초 해체됐다.
◆ "입시 도움 안 돼" 운동부 기피… 체육회·협회는 '강 건너 불구경'
학교는 안전사고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다. 운동부가 학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색안경도 여전하다. 경기지역의 한 학교체육 담당 장학사는 "소위 입시 결과가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는 운동부가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기피하는 분위기"라며 "운동부 창단과 해체는 학교 의견이 중요한 문제여서 교육청이 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지원 방안은 부족하다. 선수 육성에 역시 책임이 있는 지역체육회나 종목협회 등은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설명이다. 충청지역 한 운동부 지도자는 "지역 감독들은 모두 학생이 없어서 버거워한다. 운동 신경 있는 학생 하나를 두고 모든 종목 지도자들이 경쟁하듯 눈독 들인다"며 "현장은 이렇게 힘든데 지원책을 고민하는 분들이 진짜 없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1993년 창단해 수영 국가대표 조현주(25)를 배출한 울산 월봉초 수영부는 학교장의 결정으로 해체를 앞두고 있다.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면서 현재 3·4학년 4명이 졸업하면 수영부는 사라진다. 성적은 좋았다. 지난 20일 울산광역시교육감배 수영대회 여자유년부 배영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메달 5개를 획득했다.
하지만 교내 수영장이 없다 보니 근처 수영장까지 이동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의 책임 소재가 학교 측에 부담이 됐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측에서 안전 문제, 학생 수급 어려움 등을 이유로 수영부 폐지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18년간 월봉초 수영부를 지도한 박모 코치가 애를 써봤지만 무용지물이다. 울산지역 학교운동부 지도자 모임 대표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는 "예전에는 1년에 3번 전국대회를 나갔지만 이제 학교 측에서 1년에 1번만 나가라고 한다"고 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의 모교인 경기 포천 동남고 탁구부도 이미 2003년에 없어졌다. 다만 올해 초 유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된 이후 포천시청을 방문하면서 총동문회 중심으로 재창단 이야기가 나왔다.
◆ '전국 3위 배구팀' 오가초 해체…금오초로 전학 간 선수들

학생 수가 줄어도 학교의 의지, 지역사회 지원이 뒷받침되면 운동부는 이어질 수 있다. 충남 예산 오가초는 지난해 전교생이 40명까지 줄면서 배구부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인근 학교 금오초가 배구부를 창단하고 오가초 선수 2명과 감독을 받아줬다. 장효실 감독이 교체 선수 없이 6명으로 지난해 제5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배구 남자 12세 이하부 경기에서 전국 3위를 거둔 성과를 앞세워 지역사회를 설득했다. 장 감독과 함께 금오초로 전학 온 6학년 김민겸군(12)은 "감독님이랑 같이 와서 든든하다"고 했다. 이제는 동생 김인겸군도 합류해 형제가 한 팀으로 뛴다.
김군은 등번호 1번 금오초 유니폼을 입고 다음 달 1일 하계 땅끝 해남기 전국초등배구대회에 출전한다.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교체 선수 없이 코트를 지켰던 김군은 이제 12명이 속한 팀에서 뛴다. 김군은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배구할 때 수도 맞고 무척 재밌다"고 했다. 연습 경기에서 점수를 내자 "으아!", 공을 내가 받겠다며 "마이!" 구호를 신나게 외쳤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정부 기조 아래 10년 넘게 운동부 활성화 계획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우여곡절 끝에 수립된 계획도 실행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좌초되기 일쑤였다. 부처 간 '핑퐁' 속에 장기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서 운동부 선수와 감독들은 현장에서 시행착오만 반복하고 있다.
29일 교육계와 체육계에 따르면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제3차 학교체육 진흥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계획엔 포함된 '거점형 학교운동부' 모델안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거점형 학교운동부는 지역에 거점을 두고 인근 학교운동부를 통합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전국적인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운동부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학생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거점형 학교운동부는 '미래 체육인재 육성 강화'라는 과제 아래 국가 차원의 학교운동부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2024년까지 거점형 학교운동부 구축 및 운영 모델안을 마련한 뒤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확대 추진한다고 적었다.
문체부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따로 (거점형 학교운동부) 모델안이 있진 않다"며 "올해 운동부 창단 지원 사업으로 공모를 내면서 거점형 학교운동부를 우선 선정한다고는 발표했고, 선정한 학교 5곳 중 1곳은 거점형"이라고 말했다.

◆ 12년간 1400개 감소… '공부하는 학생 선수' 구호만
그동안 문체부가 발표한 학생선수 지원 방안은 공염불에 그치곤 했다. 2013년 발표된 1차 기본계획에는 '지역거점 학생선수 통합지원센터'를 5곳에서 2015년까지 17곳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센터는 학생선수를 둔 학교에 과학적인 훈련 방법 교육과 심리 상담을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2014년을 끝으로 센터 운영이 끝났다. 센터를 운영하던 체육인재육성재단이 국민체육진흥공단에 통폐합되면서다.
2018년 2차 기본계획에서는 '운동하는 모든 학생, 공부하는 학생 선수'라는 구호 아래 운동부 활성화 계획이 실종되다시피 했다. 운동부 관련 정책은 학생선수 학사 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저학력제 엄격 적용, 체육특기자 선발 시 내신성적 반영 의무화 등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 사이 학교운동부가 설 자리는 줄어갔다. 2012년 5281개에 달하던 운동부 운영 학교는 지난해 3898개로 줄었다. 12년간 약 2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학생선수는 7만1518명에서 4만4723명으로 37.5%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율인 25.5%보다 더 크게 줄었다.

교육부도 지난 15년간 '학교체육 활성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운동부 학생선수 인권 보호, 폭력 예방 등에 초점을 맞췄다.
교육부와 문체부가 만든 협의체에서도 운동부 육성 계획은 주요 논의에서 배제됐다. 문체부에 따르면 두 부처가 협업하는 '학교체육 정책협의체'는 2022년부터 지난 6월까지 차관급, 국장급, 과장급 협의체를 포함해 총 13회 열렸다. 주요 논의 안건은 △학생선수 출석인정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 등에 그쳤다.
학습권은 강조됐지만 정작 운동부 학생들의 '운동할 권리'는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원희 경일대 스포츠복지학과 교수는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선수로서의 권리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며 "최근 몇년간 선수로서 운동할 수 있는 권리는 학습권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밝혔다.
◆ "소관 아니다"… 책임 떠넘기는 부처들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책임지고 나서는 주체는 없다. 교육부에서는 통계 취합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운동부 종목별 현황 등 세부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교육부의 의무 조사 항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체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 지역 내 한 교육청 소속 장학사 A씨는 "교육청에선 운동부 학생 수에 비해 많은 예산을 운동부에 투입하며 선수 수를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정작 학생선수 육성을 담당하는 문체부는 운동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학교운동부 지원 방안으로 운동부 창단 지원 사업뿐 아니라 '국립체육영재학교'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달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영재학교가 기존 학교운동부 운영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임새미 인천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체육고등학교에선 영재학교를 반대할 것"이라며 "우수한 선수들을 다 뺏어간다고 생각할테니 원활히 운영이 될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위기에 처한 운동부를 살릴 지속가능한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현 지역거점형 모델인 지정스포츠클럽은 운동부에 비해 수준이 낮다"며 "많은 운동부가 해체 위기에 놓였지만 선수들이 갈 곳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박소현 "만나던 男, 성폭행범 소송당해"…당시 지인들 반응 '깜짝' - 머니투데이
- '트리거' 학폭 피해자, 이경실 아들이었다…"신인인 줄" 누리꾼 깜짝 - 머니투데이
- '해바라기' 배우, 노숙인 쉼터 전전…"신용불량, 병원비도 없어" - 머니투데이
- 탁재훈, 母적금 깨서 세금 납부?…"완전 쓰레기네" 아우성 - 머니투데이
- 故서희원 묘소 앞 구준엽 야윈 모습…옆엔 반도 못 먹은 국수 그릇 - 머니투데이
- 김숙, 제주 220평 집 리모델링 불가? "국가 유산 덤터기 쓴 듯" - 머니투데이
- 야식 먹고 누웠더니 가슴이 불타듯…알고보니 '이것' 때문? - 머니투데이
- 트럼프, 지상군 투입 안 한다 했지만…"美해병대 중동 추가파견" - 머니투데이
- 美 지상군 투입 관측에 증시 급락…이란전 2차 패닉셀[뉴욕마감] - 머니투데이
- "음료수도 안돼요" BTS 공연, 반입 물품·안전 관람 '필수 체크'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