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목단 / 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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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1964~, 경북 감포 출생)의 목단은 읽을 때마다 행간의 표정이 달라지는 묘한 매력에 놀란다.
목단을 따라가 보면, 화자인 소리꾼이 어떻게 하면 가장 목소리를 잘 낼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뇌한다.
기실 이 시는 '목단'의 꽃 피우는 행위와 소리꾼이 명창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시인의 밤낮 없는 시작(詩作) 행위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고도의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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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단 / 이향
소리에 심을 박으라고 선생은 말하지만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것만 잘 하면 다 된다는데// 아득하다//심이란 진흙탕 물을 다 가라앉힌 샘물 같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만난 팽나무의 굵은 허리 같기도 한데// 목단을 본다// 어디까지 내려갔다온 것일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에 찔렸던 것일까// 마음에 소리를 심으라는 말이 또 붉어온다// 심이란 독약 든 사발 같기도 하고 흰 눈 소복한 은그릇 같기도 한데// 목단은 뙤약볕에 한껏 벌어지고 있다
『2013, 문학동네』
이향(1964~, 경북 감포 출생)의 「목단」은 읽을 때마다 행간의 표정이 달라지는 묘한 매력에 놀란다. 이 시의 핵심은 "소리에 심을 박다"란 시구이다.「목단」을 따라가 보면, 화자인 소리꾼이 어떻게 하면 가장 목소리를 잘 낼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뇌한다. 원래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 장단에 맞춰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즉흥 장르이다. 「목단」은 어찌 보면, 계면 성음의 서편제 풍으로, 슬프고, 애조를 띤 데다 가냘픈 느낌을 시 행간 사이로 슬몃 드러낸다. 명창이 되려면 판소리의 사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장단, 조, 성음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목단」속에도 나오지만, 소리에 "이면(裏面)을 그린다" 또는 '심을 박는다'라고 하는 말은, 타고난 자신의 음색과 성량을 바탕으로 피나는 수련을 계속해서 "득음"하라는 선생의 염원이 '심' 한자에 담겨 있다. 스승의 소리를 마음으로 받아 제자에게 전한다는, 구전심수(口傳心授)와 일맥상통한다. "심이란 진흙탕 물을 다 가라앉힌 샘물 같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만난 팽나무의 굵은 허리 같기도 한데"라는 시구는, 모호함의 절정이다. 최고의 소리꾼은 목성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질러가며 목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부단히 연습해, 통달명랑(通達明朗)한 소리의 경지까지 가야 한다. 그리하여야만 마침내 벽공을 뚫을 듯, 광활한 지역을 울려 덮을 듯, 그 웅장 쾌활한 성량은 신비에 도달한다. 청중들이 소리꾼의 성음만 듣고도 사설에 담긴 온갖 희로애락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기실 이 시는 '목단'의 꽃 피우는 행위와 소리꾼이 명창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시인의 밤낮 없는 시작(詩作) 행위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고도의 은유이다. 목단이 "뙤약볕에 한껏 벌어지"기 위해서는, "독약"든 사발을 마셔야 할 만큼의 각오가 되어있어야만 꽃을 피울 수 있음을, 화자는 '심'을 통해 역설로 독백한다. 이 시는 몽환과 소곤거림과 은폐의 시학으로 가득 차 있다. 사물 간의 이런 불협화음은 웅얼거림으로 드러나며, 고립된 자아의 모순으로 격조 높게 형상화되었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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