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편집실에서]

2023년 7월, 얼마 전 내린 기록적인 폭우처럼 당시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졌습니다. 많은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국방부는 지원·복구 작업에 장병 2만여명을 투입했습니다. 당시 해병대 제1사단도 장병들을 동원해 경북 예천의 내성천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섭니다. 그러다 한 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넉 달 전 입대한 스무 살 청년 채수근입니다.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도 없이 물이 불어나고 유속이 빨라진 하천에 들어가 수색을 하다 희생됐습니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단장을 맡은 박정훈 대령은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이 안전대책 없이 무리하게 병력을 투입,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것으로 결재를 받습니다. 그러나 수사 이첩 당일 국방부는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사건 기록을 회수합니다. 수사 외압 논란이 시작점입니다.
2년을 끌어온 외압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시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크게 화를 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은 이후 사건 이첩을 보류시키고 수사 결과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게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입니다.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등 그동안 윤 전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 모른다, 들어본 적 없다며 격노설을 인정하지 않았던 핵심 인사들의 실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니라고 하더니 정권이 바뀌니 입장이 180도 달라지네요. 12·3 불법 계엄을 비롯해 재임기간 제기된 각종 책임 문제에 대해 억지와 거짓말로 버텨온 윤 전 대통령은 드디어 마주하게 된 진실의 순간을 또 어떻게 모면하려 할까요. 손바닥으로 가려온 하늘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낙마한 이진숙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학계의 연구 윤리에 대해 들여다봅니다. 부실 학술지라도 게재된 논문 숫자 자체가 실적이 되고, 표절이나 기여도 등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연구자들이 관행과 부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실을 짚어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의 근로자 지위가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소송 제기 12년 만에 삼성 노동자로 인정받은 박병준씨를 만나 그간의 투쟁기를 들어봤습니다. 보좌진 갑질 의혹이 제기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지만, 여권 인사들이 강 후보자를 두둔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내로남불’ 인식은 두고두고 이재명 정부에 부담이 될 듯한데요, 강선우 사태가 남긴 후유증을 분석했습니다. 최근 계엄과 민주주의를 다룬 책을 낸 민병두 전 의원을 인터뷰했고, 가상화폐로 옮겨간 미·중 패권 경쟁 전망,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되는 민생회복지원금 알뜰하게 쓰는 법도 알아봤습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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