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 미필적 고의 살인” 李대통령, 징벌적 배상 추진
전담 수사단 시스템 구축 지시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반복적인 산업재해 사망 사고에 대해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과 대출 규제 같은 경제적 제재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에서 올해 다섯 번째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했다. 전날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포스코이앤씨에선 1월 경남 김해, 4월 경기 광명과 대구에서 사고가 발생해 올해 4명이 사망했다. 포항제철소에서도 3월 근로자가 사망해 포스코 계열에서만 올해 다섯 차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 대통령은 “살자고, 돈 벌자고 간 직장이 전쟁터가 된 것 아니냐”며 “사람 목숨을 사람 목숨으로 여기지 않고 무슨 작업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처벌받아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난다는 점을 언급하며 “재계에서는 이 법에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것을 검토해 봐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불법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액을 물리는 제도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형사적 처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등 경제적 제재, 공공입찰 참가를 제한하거나 영업정지 등을 병행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법무 장관에게는 ‘전담 수사단 체계’를 구축해 보라고 지시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이날 사과 담화문을 통해 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 모든 현장의 작업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7시간 만이었다.
◇李 “산재 반복 땐 주가 폭락시켜야”… 대출 제한도 언급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장관들과 1시간 30분가량 중대 재해 근절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중대 재해로 이슈가 되면 대출을 제한하는 것을 여신 업무 관련 내규에 담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아주 재미있는 것 같다. 산재 사망 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출은 당장 조치를 할 수 있는 부분 같다”며 “경제적 제재를 해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또 “중대 재해 예방을 하는 데 경제적 불이익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며 반복적으로 산재 사고가 난 기업에 대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감점을 통해 투자에서 불이익을 받게 하거나, 대출 제한을 받게 하는 방식 등을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산재 예방을 위해 300명의 근로감독관을 구성한 고용노동부의 김영훈 장관을 향해 “단속 나가시나”라고 물었다. 김 장관이 “매주 나간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매일 나가야지, 왜 매주 나가시나. 불시 감독, 저도 한번 같이 가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어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특공대라 생각하시고 정말로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김 장관은 “직을 걸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산재가 안 줄면 직을 거십시오”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곧바로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전국 65개 공사 현장 모두에 대한 산업안전 보건감독에 착수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기업에 대해 국가 계약 입찰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 제안에도 이 대통령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 위반 확정 시까지 몇 년이 걸리지 않나. 사고가 발생하면 제한하는 걸로 하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건설사의 경우엔 건설 면허를 취소하는 것도 도입하는 게 어떤가”라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6월 23명이 숨진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에 대해 “대표에게 20년을 구형했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사망자 1인당 형량이) 교통사고 처리보다 별로 세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이 산재 사망 사고 근절을 위한 ‘전담 검사제’를 제안하자, 이 대통령은 ‘전담 수사단’을 언급하며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찰은 인력이 조금 있는 편이니까 전담팀이나 지휘팀을 하나 두는 게 어떻겠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거론하며 강경한 기조를 보이는 것은 친여 진영과 지지층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에도 산재 사망 사고가 난 SPC 공장을 방문해 경영진을 향해 경고한 바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대선 때 친기업 행보를 했고 1기 내각 인선에서도 기업 출신 인사를 대거 발탁한 것을 두고 좌파 진영 내 반발이 거세다”며 “노란봉투법의 7월 임시 국회 처리와 함께 지지층 달래기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참모들은 경험을 통한 소신이라고 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소년공 시절 팔을 다쳐 장애를 갖게 됐다”며 “나도 산재 피해자”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다만 경영계에선 “사망 사고 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주가 폭락 등을 언급하는 건 과도하다”란 지적도 나온다.
이날 국무회의는 TV,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과거에도 모두발언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비공개 논의 과정을 공개한 건 역대 최초다.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직전 “산재 근절 대책은 국민 모두에게 가감 없이 알려야 할 사안”이라며, 토론 과정을 생중계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 회의는 도시락 오찬을 겸한 비공개 회의까지 합쳐 3시간가량 진행됐다.
포스코이앤씨는 즉각 사과에 나섰다. 정희민 대표이사는 이날 직접 사과문을 읽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인명 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 참담한 심정과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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