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은 이미 영화였다, 아무도 찍지 않았을 뿐

백수진 기자 2025. 7. 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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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 헤즈’ 콘서트 실황 내달 개봉
영화 제목인 ‘스탑 메이킹 센스’는 ‘말이 되지 않게 하라’는 뜻. 토킹 헤즈의 리드 보컬 데이비드 번은 말도 안 되게 기묘한 퍼포먼스로 관객을 휘어잡는다./찬란

조디 포스터와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스릴러 ‘양들의 침묵’(1991)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 조너선 드미 감독은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한 밴드의 공연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매력적인 빌런처럼 관중을 홀리는 리드 보컬, 점층적 서사가 있는 공연 구성, 폭발하는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이건 이미 한 편의 영화인데, 아직 아무도 찍지 않았을 뿐이다.” 공연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바로 밴드 측에 영화화를 제안했다.

조너선 드미 감독이 전설적인 밴드 ‘토킹 헤즈’의 콘서트를 담은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1984)가 41년 만에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다. 미국 의회 도서관이 영구 보존작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토킹 헤즈의 인지도가 낮아 그동안 개봉하지 못했다. 최근 유명 할리우드 제작사 A24가 영화 40주년을 맞아 4K 버전으로 리마스터링하면서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8월 13일 개봉).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찬란

1970~1980년대 주로 활동한 토킹 헤즈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혁신적인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영화는 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에서 열린 이들의 콘서트를 4회에 걸쳐 촬영한 뒤 교차 편집했다. 인터뷰나 관객 반응 없이 오로지 무대 위 퍼포먼스에 집중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인물 중심으로 멤버 한 명 한 명을 비추며,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무대가 이어진다.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의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 관람을 추천한다. 쉴 새 없이 뛰고 팔다리를 흔드는 광란의 춤사위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흥이 넘치는 무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었던지, 지난 22일 열린 국내 첫 시사회에선 영화가 끝나자마자 이례적으로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수입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는 “요즘 관객은 극장에서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기 때문에 콘서트 영화 수요가 커졌다”면서 “리액션 상영회나 댄스 상영회 등 다양한 형식의 상영회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40여 년 전 영화지만 지금 봐도 놀랄 만큼 젊고 신선하다. 콘서트는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영화처럼 구성됐다. 보컬 데이비드 번이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 메고 텅 빈 무대에 홀로 올라 ‘사이코 킬러’를 부르기 시작해, 곡이 바뀔 때마다 무대가 하나둘 조립되고 밴드 멤버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여기에 스릴러 같은 연출이 더해지며 공연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마지막에야 춤추고 열광하는 관객을 비추며 화룡점정을 찍는다. 훗날 데이비드 번은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 /디즈니+

전설로만 회자되던 콘서트 영화의 재발굴은 최근 영화 시장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 콘서트 영화가 블록버스터급 흥행을 거두면서, 해외에서도 공연 실황 영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2023)는 전 세계에서 약 2억6000만달러(약 3580억원)를 벌어들이며 역대 콘서트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썼다. 이후 팝스타들의 공연 영화 제작이 활발해졌다. 빌리 아일리시는 지난 19일 ‘아바타’ 제임스 캐머런과 손잡고 3D 콘서트 영화를 제작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재결합한 오아시스의 월드 투어는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로 유명한 스티븐 나이트가 제작을 맡기로 했다.

국내 공연 영화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19년 42억원이었던 연간 매출은 2024년 264억원이 돼 6배 이상으로 늘었다. BTS·블랙핑크 등 콘서트 영화를 제작해 온 CJ 4D플렉스는 해외시장으로도 발을 넓혀, 내년에는 린킨 파크의 공연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오윤동 CJ 4D플렉스 스튜디오 담당은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영화의 흥행을 기점으로 해외에서 협업 문의가 부쩍 늘었다”면서 “국내에선 충성도 높은 팬덤의 N차 관람 중심이라면, 해외에선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비하인드를 담아 더 넓은 관객층을 공략하는 추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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