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업단지와 고려유물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
산단 아래 고려시대판 산단이?… 개성서 온 각종 장인들 이주터
청자·벼루·금속류 등 526점 발굴
지체 높은 집안 거처·관공서 추측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옥림리 일대에는 인천상공회의소가 주도해 조성한 강화일반산업단지(강화산단)가 있다. 강화산단 조성 과정에서 대규모 고려 유물이 발굴됐다. 강화산단은 다양하고 화려한 유물들을 수습한 뒤 그 자리에 세워졌다.
인천지역 공장부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강화지역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조성한 강화산단에 입주한 기업체의 면면은 우리나라 제조업 기술 수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유물 단지’ 위에 선 강화산단은 800년 전 유물과 그 시대 장인의 기술 수준까지도 함께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강화산단 조성사업 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는 2013년 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1년여 동안 진행됐다. 조사 면적은 21만3천㎡ 정도였다. 이곳에서 고려~조선 시대에 걸친 건물지와 무덤 등이 다수 드러났다. 여기서 발굴된 유물만 각종 청자, 도기, 기와, 벼루, 석재, 금속류 등 526점이었다. 고려 건물지에서는 쇠스랑이나 괭이 같은 농기구와 중국 북송 시기 황송통보(皇宋通寶) 같은 동전도 나왔고 중국 자기도 있었다. 고려시대 건물지에서는 청자가, 조선시대 건물지에서는 백자가 주로 출토됐다.
고려시대 건물지는 상단, 하단으로 구분돼 건축된 곳도 있었는데 아래위를 계단으로 연결하는 식이었다. 배수 시설도 체계적으로 갖췄다. 고려시대 한 건물지 가운데 지점에서는 ‘연화무늬 청석’이 발굴됐는데, 이는 흙으로 된 마당 같은 곳을 연꽃무늬로 수놓은 고급 돌로 포장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건물이 무척 고급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꽃무늬를 새긴 연화문 청석과 똑같은 길이(46.2㎝)의 무늬 없는 청석도 출토됐다. 청석으로 바닥을 깔면서 중간중간 연화문 청석으로 포인트를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붓글씨를 쓸 때 필수품인 벼루도 발굴됐는데, 벼루에 먹을 갈 때 필요한 물을 담아두는 청자로 만든 사자 모양의 연적(청자사자모양연적) 조각도 나왔다. 이 건물지가 지체 높은 집안의 거처였거나 문서 작성이 많은 관공서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자, 기와, 벼루, 청석, 각종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각각의 물품에 맞는 기술자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만드는 장소도 독립적으로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발굴된 500여 점의 유물은 고려시대 얼마나 다양한 직종의 기술자들이 강화도에서 활약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무척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고려시대 관리를 지낸 최사위(崔士威, 961~1041) 묘지명에 따르면 고려는 정부 차원에서 전국 기술자(장인) 명단을 작성해놓고 있었다. 이 명단은 기술자들의 호적 같은 것으로, 중앙과 지방으로 구분해 기록돼 있다. 1010년 거란이 침략했을 때 당시 수도 개성에 보관하고 있던 이 기록이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최사위가 이를 다시 작성해 각 관청마다 배포했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다고 최사위 묘지명에는 적혀 있다.
개성에 있던 각종 장인이 모두 강화로 이주해 개성에서와 같은 일을 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당시 강화에는 아마도 청자 만드는 곳, 기와 굽는 곳, 벼루 만드는 곳, 농기구를 제작하는 대장간 등이 개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따로따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강화산단 조성사업 부지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고려 천도(遷都) 시기 강화지역 생활사와 각 분야 기술 수준을 살필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강화산단이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800년 전 고려를 보는 또 다른 창구가 된 셈이다.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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