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톡'] 슬기롭게 피워낸 나의 한국 생활

이와미 나오코 일본 출신 결혼이주여성 2025. 7.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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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남편과는 캐나다에서 처음 만나 몇 년간 장거리 연애를 이어오다가, 한국에서 함께 살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한국 생활은 기대와 설렘 속에서 시작됐지만, 늘 제 마음속 한편에는 '이곳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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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남편과는 캐나다에서 처음 만나 몇 년간 장거리 연애를 이어오다가, 한국에서 함께 살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평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한국에 정착하니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언어였습니다. 한국어를 빨리 익히고자 부산 부경대학교와 한국어 학원 등을 다니며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한국 생활은 기대와 설렘 속에서 시작됐지만, 늘 제 마음속 한편에는 '이곳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태어난 후 창원으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 점점 커졌고, 한국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자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다양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문화 이해 교육 강사'라는 역할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외국인 엄마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문화 이해 교육 강사 양성 과정을 이수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 모국인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한 문화 소개를 넘어,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매우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일본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다문화 인식 개선 수업을 통해 다문화를 소개하고, 문화다양성 축제(MAMF)나 한일 교류 행사 등에서도 일본 문화를 전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만약 제가 일본에 계속 머물렀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소중한 일들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매일 스스로 질문합니다. '나는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저는 지금도 저답게, 그리고 슬기롭게 한국 이주 생활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고민도 계속되겠지만, 기운차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온 힘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이와미 나오코 일본 출신 결혼이주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