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1장] 전주성 입성(197회)

왕이 표정은 없으나 마음은 심란한 상태로 말하였다.
"민심이 사납게 돌아가고 있다. 듣자 하니 전봉준이 미래의 군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정감록인가 뭔가를 믿고 백성들이 추종한다고 하는데, 그럼 과인을 내쫓는단 말인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옵니다. 소신들이 결단코 막아낼 것인즉, 진정하십시오."
"하지만 요상한 세상이로다. 이런 허무맹랑한 소문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괴이한 것이 발을 달고 날개를 달아 온 천지사방을 돌아다닌다."
"마마, 발본색원할 것이옵니다. 진정하시옵소서."
"그자들이 가짜 왕이라는 점을 온 나라에 선무하도록 하라."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다만 백성들의 이런 동요는 주민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들 때문이옵니다. 그들로 인하여 민심이 이반 되었다고 보는 것인즉, 그자들을 척결하여 민심을 달래야 할 것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그렇게 할지어다."
이렇게 해서 전라감사 김문현이 쫓겨나고, 안핵사 이용태, 균전사 김창석, 고부군수 조병갑에 이어 영광군수 민영수, 함평군수 권풍식이 쫓겨났다. 취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징치(懲治)한 것인데, 거기에도 편파적 수사가 있었다. 취조관의 입맛에 따라 수사하다 보니 억울한 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중 함평군수 권풍식이 대표적이었다.
권풍식은 은연중 동학에 동조하고 있긴 하였으나 그렇다고 행정업무를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양호초토사 홍계훈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반란동조자로 장계(狀啓)가 올라가 곤장 일백 대에 삭탈관직이 되었다. 그런 반면에 영광군수 민영수는 세곡창을 빼앗기고 관군마저 내팽개치고 도망을 갔으면서도 오히려 영전했다. 여흥민씨 왕후 척족이란 뒷배 때문이었다. 그는 해주군수에 이어 왕실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임명되었다. 왕실 조직에도 없는 특별직까지 마련하여 임용된 것이다.
거기에 세도정치, 외척 정치가 나라를 골병들게 하고 있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세도정치에 이어 민왕후의 여흥민씨 적족청치로 나라가 갈가리 찢겼다. 어느새 여흥민씨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도정치에 진절머리를 낸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자마자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를 몰아냈지만 고종이 친정을 강화하면서 부인 여흥민씨의 친인척이 인사·군사·경제 전반의 주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관직을 매매하고, 상납을 일상화하고,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해 사회 불안을 심화시켰다. 이렇게 여흥민씨 일족이 앞서 자행된 세도정치 뺨치는 난정(亂政)이 횡행하였디.
이런 사실을 궁궐 앞 객줏집에서 목도한 전봉준의 비서 정백현이 그 길로 말을 타고 남하했다. 원평에 당도하자 그는 전봉준 대장을 찾았다.
"민왕후와 그 일족들의 만행으로 혁명의 분위기는 점증해가고 있습니다. 운현궁 분위기를 살피니 왕실이 흥선대원군을 잡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전봉준 장군과 야합하여 궁궐을 접수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그래서 대원군 영감을 집에 가두고, 중앙 정예군을 남하시켜 동학농민군을 섬멸한다는 계획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증파되는 중앙군은 최신 무기를 갖춘 군사라고 합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전봉준이 물었다.
"대원군 대감을 청나라로 압송한다는 말은 없던가?"
전봉준은 다른 경로를 통해 흥선대원군이 피를 보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고군산열도 첨절제사 이태형이 함평만에 머물고 있는 왜인 요시다를 시켜 이 기밀을 알려준 것이었다. 요시다에 따르면 조정은 동학농민군을 섬멸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의 파견을 요청하고, 대원군을 인질로 잡아 청나라로 압송한다는 계략이었다. 그렇다면 일본군은? 갑신정변 이후 일본군이 조선에서 물러나면서 청군도 함께 물러나고, 만약에 청군이 조선 땅에 들어오면 일본군도 조선 땅에 들어온다는 협약을 맺었던 것이다. 갈수록 동학농민전쟁은 복잡하게 헝클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빨리 해결하려면 전주성을 함락시켜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태인의 대접주이자 동학농민군 2인자인 총관령 김개남이 반대하고 나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