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90> 17세기 문사 계곡 장유가 손님 치른 후 읊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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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에 졸음 귀신 항복 받아내고(茶甌贏得睡魔降·차구영득수마항)/ 남실바람 부는 북창 가에 흰 모자 쓰고 앉았네.
/ 헛된 명성에 천 수의 시만 남았으니(虛名漫有詩千首·허명만유시천수)/ 술 한 병도 사 먹기 어려운 박봉이라네.
/ 손님 다 돌아간 뒤에 바둑판 치우면서(歛却殘棋客散後·염각잔기객산후)/ 처마에 쌍으로 날아드는 제비 새끼나 한가로이 보네.
함련에서는 벼슬은 다 헛된 것이라며 여태 살면서 남은 건 시 천 수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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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에 졸음 귀신 항복 받아내고(茶甌贏得睡魔降·차구영득수마항)/ 남실바람 부는 북창 가에 흰 모자 쓰고 앉았네.(白帢風輕坐北窓·백갑풍경좌북창)/ 장유가 어찌 궁정에 머물 수 있겠는가?(長孺豈堪留禁闥·장유개감류금달)/ 계응처럼 정말로 오강에서 늙고 싶다네.(季鷹眞欲老吳江·계응진욕로오강)/ 헛된 명성에 천 수의 시만 남았으니(虛名漫有詩千首·허명만유시천수)/ 술 한 병도 사 먹기 어려운 박봉이라네.(薄俸難供酒一缸·박봉난공주일항)/ 손님 다 돌아간 뒤에 바둑판 치우면서(歛却殘棋客散後·염각잔기객산후)/ 처마에 쌍으로 날아드는 제비 새끼나 한가로이 보네.(閑看乳燕入簷雙·한간유연입첨쌍)
위 시는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87)의 ‘차운하여 조숙온에게 답하다’(次韻酬趙叔溫)로, 그의 문집인 ‘계곡집(谿谷集)’ 권 30에 수록돼 있다.
조숙온(趙叔溫)은 조박(趙璞)을 이르며 숙온은 그의 자(字)이다. 조숙온은 1606년 식년시에 급제한 문사다. 수련과 경련에서는 위 시를 읊은 장유가 지금은 궁궐에서 벼슬을 하고 있지만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그려내고 있다. 함련에서는 벼슬은 다 헛된 것이라며 여태 살면서 남은 건 시 천 수 뿐이라고 한다. 미련에서는 손님들과 함께 바둑을 두며 즐기다 손님이 돌아가니 허전하다고 했다. 손님 중에 조업도 있었던 모양이다. 처마로 날아드는 제비 새끼를 쳐다본다는 표현이 그런 서운한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셋째 행의 ‘장유’는 중국 한(漢)나라 때 직간을 잘 하기로 유명한 급암(汲黯)의 자이다. 위 시를 지은 장유는 급암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다. 넷째 행에서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만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이다. 계응(季鷹)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의 자(字)다. 벼슬을 하다가 고향인 오중(吳中)이 생각나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어제 부산에서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부부 손님이 찾아오셨다. 필자가 차 농사를 지으면서 쓴 글을 묶은 ‘차산 가는 길’(푸른별·2024)을 읽었다고 하셨다. 차밭을 보고 싶다고 해 올라가 둘러봤다. “우리도 귀촌해 박사님처럼 살고 싶은 생각입니다.” 차를 마시며 이곳의 생활 등 여러 이야기를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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