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배워서 남 주는 시대

반가운 보도자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부가 '전 국민 AI 전사 육성 사업단' 출범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 군 장병, 일반 시민까지 인공지능을 '기본 소양'으로 익히게 하겠다는 계획, 그리고 2026년부터는 정규 교육과정에 AI 기초교육을 본격적으로 포함하겠다는 청사진이 담겨 있었다. 이는 단순한 교육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국가적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강한 선언이었다. 정부의 방향은 명확해 보였다. 문제는 우리다. 과연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기술의 시대에 진짜 변화는 제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삶의 현장, 그 안에서 기술을 익히고 이해하며, 다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비로소 기술은 사회의 언어가 된다. 경기도가 기획한 'AI 도민강사 양성과정', 이른바 '나는 강사다!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정보를 주입받는 교육이 아니라, 각자가 배운 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나누는 '배움의 선순환'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토요일 아침 9시, 성균관대학교 판교 캠퍼스에 누군가는 멀리 파주에서 두 시간을 달려왔고, 또 다른 이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급히 도착했다. "오늘 에너지음료는 제가 준비했어요." 음료를 건네는 회장님의 인사가 동기들 얼굴들 사이의 긴장을 부드럽게 한다. 이들이 강의실로 들어서며 꺼내든 노트북과 눈빛에는 공통된 의지가 엿보인다. 대학교수, 공무원, 프리랜서 강사, 언론사 기자, 대학 재학생까지, 연령도 직업도 성별도 다양하지만 모두가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 오늘은 배우고, 내일은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다짐이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오늘 강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스마트폰 음성비서·병원 진단 시스템·공장의 자동화 로봇·은행 챗봇까지, 이제 이들을 '내가 가르칠 수도 있는 대상'이 되자 강의실의 공기가 바뀐다. "AI는 진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문장을 만들 뿐이죠"라는 설명이 이어지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부터 GPT의 작동 원리, 환각(hallucination) 개념까지 수업은 빠르게 몰입을 유도한다.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이라는 사실, 그래서 AI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를 훈련하는 도구라는 인식이 서서히 퍼진다.
수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실전의 장으로 바뀐다. 시니어를 위한 AI 리터러시, 소상공인을 위한 챗GPT와 제미나이 활용 실습, 다문화 이주민을 위한 입문 교육, 아이들을 위한 AI 그림책 수업 등 각자가 기획하고 있는 현장의 주제가 다양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시장 상인들과 블로그 수업을 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어르신들에게 AI를 쉽게 설명하려면 어떤 접근이 좋을까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실제로 강의를 구성하고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는 장면을 상상하며 수업은 더욱 밀도 있게 진행된다.
수업 중반부부터는 교수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는 커리큘럼이 함께 진행된다. 단순히 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어떤 흐름으로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된다는 것과 문제중심학습(PBL: Problem-Based Learning) 기법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 실습은 개개인의 교육 기획 역량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AI를 배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교육으로 전환하는 단계까지 포함된 구성은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이들이 모두 AI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배우려는 자세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한 참가자는 "아이 앞에서 AI가 뭔지도 모른다는 게 부끄러웠어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은퇴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가 영광스럽게 함께하게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누군가는 작은 공부방 아이들에게 진짜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에 그 실천은 이미 교육이자 혁신이 되고 있다.
과정의 마지막에는 수강생들이 그동안의 배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여 직접 강의안을 작성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단순한 요약이 아닌, 자신이 가르칠 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현장을 상상하며 구성하는 맞춤형 AI 교안이다. 이 과정 속에서 질문은 명확해지고 전달력은 정돈된다. 한 사람의 배움은 이렇게 또 다른 사람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이 과정을 맡고 있는 책임교수로서, 이 장면이 반복되고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미 동두천과 화성에서 그리고 곧 더 많은 지역에서 이들과 함께 시민들을 만날 계획이다.
이제 선언은 끝났고, 실행만이 남았다. 정부가 말하는 'AI 대전환 시대'가 공허한 구호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이 주체가 되는 학습 생태계가 더 넓고 깊게 자리잡아야 한다. AI 교육의 본질은 결국 '배우고, 질문하고, 나누는 시민' 속에서 완성된다. 제도나 시스템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와 책임 있는 실천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들. 나는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경기도에 깊이 감사드린다.
배워서 뭐하냐고? 지금은 배워서 남 주는 시대다. 더불어 살아야 살아남는 시대, 기술을 알고 나누는 사람이 결국 가장 오래가는 사람이다. 공부는 끝이 없다. 아니,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AI는 질문을 바꾸는 혁명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교수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