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문서 기록된 “독도강치 3년간 4663마리 불법 포획”
‘강치잡이’ 문서에 명확히 기록
일본 어업인, 강제합병 전부터
한국 바다서 밀업… 멸종 유발
강치, 日에 없고 독도서만 서식


한·일 강제 합병 전부터 일본 어업인들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 주변에 서식해온 바다사자(일명 강치)를 불법 포획한 사실을 입중하는 일본 비밀 문서를 입수해 처음 공개된다.
이번 밝혀진 일본 정부 문서실 강치잡이 문서(명치 42년 (1909)9월23일 농죽(農竹) 599호)에는 대한민국 영토 독도에 대량 서식해온 바다사자(일명 강치)가 멸절된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일 문화 박사)는 3년간 잡은 강치가 4663마리로 환산 한다면 명치 원년(1867년)부터 수만마리 의 강치를 불법으로 잡아갔다는 것으로 산출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어부중에 나가이 요사부로(中井 養太郞)는 어민 4명과 함께 아시카 체취 합자 회사를 공동으로 차려 일년에 독도서 잡은 강치 마리수는 △명치 38년 1383마리 △명치 39년 1600마리 △명치 40년 1680 마리 △합계 4663 마리를 불법으로 잡아간 사실이 문서 기록에서 볼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울릉도와 독도 섬이 유명세를 탄 것은 강치가 서식했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사면의 바다지만 강치의 서식지는 독도뿐이라서, 이는 어부들이 독도를 좋아했던 이유였다"고 했다.
그는 또 "일본은 17세기 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남의 땅이니 들어가지 말라 고 자국민들에게 금지령을 내렸지만 어민들은 강치 포획에 혈안이 되어 밤에 몰래 와서 강치를 잡아 갔다가 막부 통치자에 사형까지 당해도 자주 밀업을 한 역사적 기록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어부들은 독도 강치를 많이 잡아가면서 일본강치라 이름을 붙여왔고, 오늘날에도 일본강치라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강치의 이름은 다양하다. 우리 나라 사람도 강치라 하지만 물개, 바다의 사자 등 이름이 다양하다. 일본도 아시카라하지만 바다의 사자(海驢), 바다의 노루(海 鹿) 등 명칭이 다양하다.
에도(江戶)시대 일본 어부들은 강치를 연구해 기름은 식용으로 사용하고 가죽은 사무라이 갑옷을 만들어 입고, 독도 강치 어업에 많은 소득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에도시대는 일본어부들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현장에서 기름을 체취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야신기치(大谷 新吉)어선 '강치 잡이의 일기'를 보면 아시카 한 마리에 기름은 10대(合)가 나왔고 독도에 출항하면은 300통(樽)씩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수입이 대단했지만 일본어부들은 당시 막부의 금지령 때문에 밀업을 못하고 명치 때까지 독도(송도양섬에)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후예들이 명치 신정부가 들어서서 또 밀업을 시작 하면서 많은 어선이 들어오면서 강치 씨가 말랐다는 사실은 기록에서 찾을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문길 박사는 "지난해 2월 일본 체류중 북해도에 독도 강치로 보이는 종이 서식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일본 어선이 들어가는 곳에는 서식처가 작은 편이고 러시아 영역에는 많은 편이다"고 했다.
특히 일본 어부들은 명치 42년 당시 일본어선들이 죽도에 아시카를 포획하기 위해 비밀리에 노력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특히 안내하는 일본어선 어민들은 북해도 인근에 강치와 관련, "일본 '다케시마' 아시카가 아니고, 한국 독도 강치라 알려 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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