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적성과 단양 적성의 역사적 재조명

경북도민일보 2025. 7. 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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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의 깊은 골짜기, 굽이치는 남한강 상류에 자리한 단양군 적성면과 낙동강 상류 지역 금천의 시류가 되는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이 두 지역은 단순한 지리적 인접성을 넘어, 한반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교차로'이자 '생존의 길목'으로 기능해 왔다. 삼국시대의 치열한 영토 다툼부터 6·25 전쟁의 아픔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은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이에 단양 적성면과 문경 동로면 적성리가 군사적·교통적 요충지로서 어떠한 역사적 역할과 의미가 있는지 조명을 해 보고자 한다.

5세기 후반, 고구려 장수왕은 강력한 남진 정책을 추진하여 백제를 압박하고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475년에는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며 한강 유역 대부분을 장악하였으며, 충주에 세워진 중원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광대한 영역과 위상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이 시기, 단양 지역 역시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에 놓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6세기 중엽, 신라는 진흥왕의 강력한 북진 정책으로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였으며.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단양에 있는 신라 적성비(6세기 중반) 라 할 수 있다. 이 비석은 신라가 그간 고구려에서 차지하고 있던 단양 적성을 점령하고, 그곳 주민들을 신라의 백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건립한 '척경비(拓境碑)'의 성격을 지닌다. 비문 속 '야이차(也爾次)'의 포상 기록은 이 지역이 신라에 새롭게 편입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단양 적성은 남한강 상류와 소백산맥을 잇는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이곳의 점령은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자 삼국 주도권 쟁탈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경 동로면 적성리와 단양 적성면이 삼국시대에는 하나의 동일한 행정구역, 혹은 최소한 밀접하게 연관된 단일 권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고, 두 지역 모두 '적성(赤城)'이라는 같은 명칭을 공유하며, 주변 교통로를 통제하는 요충지라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단양 적성과 지척에 있는 동로면 적성 일대는 단양에서 영남 내륙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특히 동로면 작성산(鵲城山)에 남아있는 작성산성과 '적성(赤城)'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삼국시대부터 견고한 방어 시설이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이 일대는 단순히 단일 성곽으로 방어된 것이 아니라,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방어 네트워크의 일부였다. 문경 동로면 적성리 부근의 할미성(노고산성)은 삼국시대 문경과 단양, 충주를 잇는 주요 교통로인 '벌재'에 축조되어 신라 성벽의 특징을 보이는 등, 이 지역의 방어선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인근 예천의 어림산성 역시 삼국시대 이전부터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 지역에 있는 방어적 요새로서, 이 일대의 군사적 중요성을 대변한다. 이 부분에 대한 선행 연구는 이미 차용걸 교수가 그의 논문 「죽령과 벌재 주변의 산성」에서 밝힌바 있다. 이처럼 여러 산성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 지역은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하게 다툰 격전지이자 국경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즉, 이 두 '적성'을 포함한 주변의 여러 산성들은 삼국시대 중부 지역의 패권을 가르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견고한 방어선이었다.

삼국시대 이후에도 단양 적성면과 문경 동로면 적성 지역은 그 중요성을 잃지 않았다. 험준한 산악 지형에도 불구하고, 영남과 한강 유역을 잇는 자연적인 통로로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중요한 교통로이자 행정로의 역할을 이어갔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혹은 지방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는 관리들과 물품 및 정보들이 이 길목을 통해 오고 갔다. 때로는 산짐승이나 도적의 위험이 도사렸으나, 필수적인 교통로였기에 그 가치는 변함이 없었다.

이 두 지역이 다시 한번 역사의 아픔 한가운데에 놓인 것은 6·25 전쟁이었다. 1950년 7월,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선이 빠르게 밀리던 상황에서 단양을 거쳐 남하하는 북한군의 주요 침투로를 반드시 저지해야 했다. 이에 따라 문경 동로면 적성리 일대에서는 연합군과 북한군 간의 '문경 적성리 전투'라는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우리 국군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적의 남진을 지연시키고, 아군이 전선을 재정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다. 특히 이 전투에서는 동로면 적성리의 할미성(노고산성)과 같은 지형지물이 방어에 활용되었음이 전해져,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이 지역이 여전히 국가 안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비록 희생이 따랐지만, 적성리 전투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과 헌신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단양군 적성면과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는 단순히 소백산맥 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들이 아니다. 이들은 삼국의 흥망성쇠, 국가의 안보, 그리고 6·25 전쟁의 아픔까지 오롯이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박물관'과 같다. 과거에는 군사적·교통적으로 생존의 길목이자 패권 다툼의 최전선이었던 이 지역은, 현대에 이르러 고속도로와 터널의 발달로 그 역할이 줄었으나, 그 안에 담긴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 지역에 얽힌 소중한 역사를 널리 알리고, 단양 신라 적성비와 같은 명확한 유산은 물론, 문경 동로면 작성산성, 할미성(노고산성), 나아가 예천 어림산성과 같이 아직 그 중요성이 덜 알려진 유적들에 대한 발굴 및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특히 6·25 전쟁의 중요한 무대였던 동로면 적성리 전투의 의미를 재조명하여 희생자들을 기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소백산맥의 고요한 품속에 숨겨진 이 역사적 교차로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은, 우리 역사를 더욱 풍요롭게 이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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