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5. 7. 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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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주간 과학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구성도 비슷해 앞부분은 잡지처럼 꾸몄다.

필자는 20여년 전부터 두곳에 실리는 서평을 보고 과학 신간을 사고 있다.

다만 늘 그렇듯이 앞부분을 읽다가 다른 일에 바빠 책장 어딘가에 꽂아두고 잊어버렸다.

두 종의 개미들은 예상대로 즉각 전투에 들어갔고 얼마 못 가 대부분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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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 자생하는 착생식물 스콰멜라리아의 도마티아 단면을 보면 두 종의 개미가 사는 공간이 분리돼 있다(각각 빨간색과 회색)(왼쪽). 이때 벽을 허물어 도마티아 내부에서 개미 두 종이 만나게 하면 바로 전투가 벌어져 대부분이 죽는다.(오른쪽) 사이언스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라이벌 주간 과학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구성도 비슷해 앞부분은 잡지처럼 꾸몄다. 필자는 20여년 전부터 두곳에 실리는 서평을 보고 과학 신간을 사고 있다. 때로는 서평에서 다루지 않았다면 설사 다른 경로로 알았더라도 결코 사지 않았을 책도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출간된 ‘플랜타 사피엔스’(Planta sapiens)는 현생인류의 학명에 빗댄 제목부터 좀 그렇고 특히 부제가 ‘식물 지능의 정체를 드러내다’여서 사이비과학의 냄새가 풍긴다. 그럼에도 식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를 소개한 네이처를 믿고 산 것이다. 인지과학자이자 생물철학자인 파코 칼보가 쓴 책으로 필자가 잘 몰랐던 찰스 다윈의 식물 연구를 소개하면서 흥미를 끌었다. 다만 늘 그렇듯이 앞부분을 읽다가 다른 일에 바빠 책장 어딘가에 꽂아두고 잊어버렸다.

최근 사이언스에 실린 식물과 개미의 특이한 공생 방식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문득 ‘플랜타 사피엔스’가 생각났다. 이 논문의 주인공인 식물 스콰멜라리아(Squamellaria)야말로 플랜타 사피엔스, 즉 슬기(지혜)로운 식물이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자생하는 스콰멜라리아는 착생식물, 즉 땅이 아니라 다른 식물 표면에서 사는 식물로 필요한 영양분을 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얻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착생식물인 겨우살이는 몸을 의탁한 식물을 약탈하는 기생체다.

스콰멜라리아는 개미와 공생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즉 덩이줄기처럼 생긴 도마티아(domatia)라는 조직의 내부 공간을 개미에게 내주고 대신 개미의 배설물에서 영양분을 뽑아낸다. 그런데 한 도마티아에 여러 종의 개미가 사는 현상이 관찰됐다. 보통 개미는 영역에 민감해 서로 다른 무리가 가까이 있으면 한쪽이 몰살될 때까지 싸운다. 그런데 최대 5종의 개미가 한 도마티아에서 별 탈 없이 살아가니 미스터리한 일이다.

영국 더럼대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도마티아의 내부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굴처럼 생긴 내부 공간이 서로 분리돼 각각에 한 종의 개미만이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마티아가 개미들의 아파트인 셈이다. 거주 공간 분리가 공존의 비결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내부 벽을 허물고 지켜봤다. 두 종의 개미들은 예상대로 즉각 전투에 들어갔고 얼마 못 가 대부분이 죽었다.

도마티아 아파트는 출입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드나들 때 만날 일이 없다. 개미들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지만 사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가 서로 다른 종의 개미 집단 사이의 파국적 전투를 막을 수 있다는 걸 알아낸 스콰멜라리아의 지혜가 놀랍다. 지구촌 곳곳에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플랜타 사피엔스’를 마저 읽어야 할 것 같아 책장에서 찾으려다 문득 한글판이 나오지 않았을까 검색해 보니 지난 5월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한발 더 나간 느낌의 제목으로 출간됐다. 아무튼 책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끝까지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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