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기아 부른 봉쇄 일부 풀어도 건강 피해는 장기화한다

채인택 2025. 7. 29. 18: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3월부터 봉쇄 뒤 7월 26일 공중투하 허용
사망자 속출하자 100개 구호기관 공동 경고 뒤 완화
2차대전 말기 네덜란드 기근 부른 나치 봉쇄 닮은꼴
독일군, 식량이동 막아 450만 굶주림…2만2000명 아사
태중 기아 겪은 출생자 대상 수십년째 장기추적 연구
심혈관질환‧조현병 등 다양한 질환 위험 줄줄이 나와
가자지구 가자시티의 샤티 난민캠프에서 한 여성이 굶주림으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2살배기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2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로 시작된 기아 사태가 이달 26일 부분적인 봉쇄 해제로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날 식량을 비롯한 구호물자의 공중 투하를 허용하면서 요르단과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27일 수송기를 동원해 물자 25t을 투하했다. 가자자구에 대한 봉쇄는 지난 23일 100개 국제구호기관이 공동으로 가자지구의 기아사태를 경고한 뒤 완화됐다.

"출생 때보다 체중 줄어 숨진 영아도"

기아로 인한 가자 주민의 피해는 비극적이다. AP통신은 27일 "출생 때보다 더 체중이 줄어 숨진 영아도 있다"고 보도했다. 뼈만 앙상한 가자 어린이 사진도 줄줄이 송신되고 있다.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피해에 가려서인지 정작 기아에 취약한 노인과 당뇨·심장질환·면역질환 등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들의 피해 보도는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의학적으로 기아는 단순한 영양물 공급의 일시적 중단 이상의 충격과 건강 피해를 준다. 음식물 공급이 재개된다고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학적 연구 결과 기아는 장기적으로 다양한 후유증과 건강 피해를 유발한다.

기아, 광범위한 문제 건강문제 유발…심혈관질환·당뇨 특히 위험

영국의 바츠 앤드 런던 의치과대의 폴 켈리 교수가 국제 피어리뷰 학술지 '영양학 발전(Advances in Nutrition)' 2021년 5월호에 게재한 논문 '기아가 내장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기아는 광범위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

우선, 전해질 부족으로 심박수와 혈압이 떨어지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을 지닌 환자, 특히 노인 환자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면역체계에 손상을 입혀 인체가 감염과 각종 질병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굶주린 신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근육 등을 자체 분해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케톤체의 농도가 혈액과 체액에서 지나치게 높아지면 의식불명이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조직 분해는 난소와 고환을 비롯한 생식기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기 건강문제 유발…태아엔 심혈관질환·조현병 위험 높여

2차대전 당시인 1945년 나치의 네덜란드 식량이동 금지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헤이그의 한 어린이. [사진=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Public Domain)]

기아는 음식을 다시 공급받는다고 해결되는 일회성 건강문제가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건강피해를 유발한다. 심지어 임신부가 기아를 겪을 경우 나중에 태어난 태아는 발육부전과 면역력 저하는 물론 장기적으로 다양한 질병에 시달린다. 그 결과는 장기간에 걸친 코호트(Cohort) 연구로 잘 밝혀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44~1945년 '네덜란드 겨울 기아(Dutch Winter Famine)'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장기추적연구다.

'네덜란드 기아 출생 코호트(Dutch Famine Birth Cohort)' 연구로 불리는 이 연구는 보건학·의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유의미한 연구로 꼽힌다. 연구는 본인들은 물론 자녀와 손자를 대상으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장기간에 걸친 연구 결과 태중 기아를 겪은 사람들은 심혈관질환·조현병 등 다양한 질환에 걸릴 위험이 다른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키와 몸무게, 가슴둘레가 작은 것은 기본이었다.

의학·보건학·역학에서 쓰이는 코호트 연구의 대표주자

코호트 연구는 특정 요인에 공통적으로 노출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장기간 추적 관찰하는 연구 기법이다. 집단간 특정 질환의 발생률 등을 비교해 질병 발생 원인을 추적조사한다. 코호트는 특정 인자를 공유하는 동일집단을 가리킨다. 역학과 보건학, 통계학 등에서 주로 쓰는 용어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병원 등 동일 시설에서 동일한 병원체에 노출되거나 감염된 환자를 통째로 격리하면서 '코호트 격리'란 용어가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기아 출생 관련 코호트 연구 논문은 영국 의학저널인 BMJ에서 펴내는 오픈액세스 저널인 브리티시메디컬저널 오픈(BMJ Open) 2021년 3월 4일자, 국제환경보건연구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Health Research) 2021년 5월호 등에 관련 논문이 줄줄이 실려있다. 권위있는 국제역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 2007년 12월호에도 보인다.

나치, 네덜란드 철도파업 보복으로 식량 끊어…2만2000명 아사

네덜란드 겨울 기아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11월부터 1945년 5월 종전 때까지 나치의 만행으로 네덜란드 전역에서 발생한 기아사태를 가리킨다.

1944년 9월 영국군과 미군 중심의 연합군은 네덜란드를 일시에 해방시키기 위해 대규모 공수부대 투입을 앞세운 '마켓가든 작전'을 펼쳤다. 당시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도 이에 호응해 철도 파업을 일으켰다. 연합군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의 파업을 가담한 철도의 운행을 중지하고 식량 운송을 금지하면서 네덜란드 전역에 혹독한 기아의 겨울이 닥쳤다. 당시 네덜란드인 가운데 450만 명이 기아를 겪었으며 2만2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네덜란드에선 이를 홍거빈터(Hongerwinter), 즉 기아의 겨울로 부르며 비인도적인 전쟁범죄로 기억한다. 가자지구 봉쇄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중립국 스웨덴과 연합군 수송기 필사적인 식량 수송

네덜란드인들이 식량을 수송하는 연합군 조종사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지상에 튤립으로 'MANY THANKS'라는 글자를 새겼다. [사진=영국 임페리얼전쟁박물관(Public Domain)]

나치독일이 네덜란드의 모든 식량이동을 금지해 벌어진 '기아의 겨울'은 국제적인 지원으로 어느 정도 완화되다가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비로소 해소됐다. 기아의 겨울 동안 중립국 스웨덴은 밀가루를 해상 수송해 네덜란드 주민들이 최소한의 빵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스웨덴 빵'으로 불렸다. 연합군은 식량 공수로 주민들의 아사를 막으려고 애썼다. 네덜란드 농부들은 벌판에 튤립으로 'MANY THANKS'라는 글자를 새겨 식량을 투하하는 연합군 수송기 조종사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과 동시에 투하 장소를 알렸다.

식량 끊은 나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처형

2차대전 종전 직전 식량이동을 금지해 '가이의 겨울'을 유발한 나치독일의 네덜란드 제국판무관 아르투르 자이스-잉그바르크.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결과 사형을 언도받고 1946년 10월 16일 처형됐다. [사진=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Public Domain)]

당시 네덜란드에서 식량 이동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나치독일의 네덜란드 제국판무관 아르투르 자이스-잉그바르크는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46년 10월 16일 처형됐다. 전범 자이스-잉그바르트는 사형 판결 직후 "그것(사형) 외에 다른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기아가 인간에게 얼마나 극심한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안겨주고, 그 건강 피해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인용될 수 있는 말이다. 인위적인 기아 유발은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에까지 타격을 주는 반인륜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의학 저널리스트 (tzschaeit@kormedi.com)

Copyright © 코메디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