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용의 세종속살이] 관세전쟁 선봉에 선 전사들

‘바람소리 소슬하고 역수(易水)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한미 무역협상을 위해 출국하는 구윤철 부총부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뒷모습을 보며 떠오른 시구다. 중국 연나라 자객인 형가는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출발하며 그 비장한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구 부총리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가 29일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위해 출국하기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3/dt/20250813153338423unkr.jpg)
그는 출국에 앞서 기자들에게 “국익을 중심으로 한미 간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협상안이 마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조선업과 한미 간 중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도 잘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역시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두 전사(戰士)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영국 스코틀랜드까지 찾아가 대통령을 수행 중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상을 벌였다. 러트닉 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저녁 식사 후 나와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기를 죽였다. 앞서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25일에는 그의 뉴욕 자택도 찾아가 협상을 이어간 바 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린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측이 예고한 협상 시한(8월 1일·이하 현지시간)을 향해 시계추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구 부총리와 김 산업장관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졌다. 김 장관은 29일 러트닉 장관을 따라 워싱턴DC로 돌아와 협상 불씨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구 부총리가 합류하면 경제 투톱이 막판 협상을 벌이게 돼 성과를 기대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빠듯한 시간이다. 28∼29일 스웨덴에서는 베선트 장관 등 미국 무역협상 주요 장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중국과 고위급 무역 회담이 예정돼있다. 미국 측과 대면 협상이 가능한 날은 실질적으로 30∼31일 이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정부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전면 타결을 낙관하기 쉽지 않다. 25%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제조업에 충격파가 불가피하다.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0%대 저성장으로 주저앉은 가운데 상호관세 폭탄이 터지면 한국 경제는 ‘시계 제로’의 한복판으로 내몰린다.
또 하나의 부담은 우리보다 먼저 타결에 성공한 일본과 유럽연합(EU)이다. 미국은 주요국과 협상을 잇달아 마무리하면서 여유를 갖고 한국을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중이다. 한국과와 대미 수출품 구성이 비슷한 일본이 15% 관세라는 마지노선을 지켜냄에 따라 우리의 부담감은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 수위를 연일 끌어 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 27일 아직 미국과 관세 관련 합의에 이르지 않은 대다수 국가에 대해 “(관세율은) 15∼20% 사이 어딘가 일 것”이라며 은근히 한국을 겨눴다.

협상 품목에는 그동안 금기시돼온 농산물까지 포함됐다. 미국의 공세가 거세지자 대통령실은 농산물 품목 중 쌀과 소고기를 반드시 지켜야 할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데서 한발 물러섰다. 일본의 경우 상호관세 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쌀과 일부 농산물 시장을 추가 개방하기로 한 바 있다. 호주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 규제를 해제했다. 미국산 쌀과 소고기 수입 확대는 다른 국가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일본은 각국에 저율관세할당물량(TRQ)을 할당하지 않아 다른 국가의 동의 없이 쌀 수입 확대가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5개국에 TRQ를 각각 적용하고 있다. 미국 물량을 늘리고 다른 나라 물량을 줄이려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회 비준도 필요한 사안이다. 여기에 단체행동을 예고한 농업인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반발도 변수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통상 분야뿐 아니라 우리의 거의 모든 카드를 내보였다는 점이다. 협상에서는 발톱을 감추고,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게 상식 중 상식이다. ‘손자병법’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말이다. ‘구지편’에는 ‘군대를 지휘하는 일은 고요하고 드러내지 않으며 엄정하고 조리가 있어야 한다.…그 계략을 변경함에 병사들로 하여금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그 주둔지를 바꾸고 그 행군로를 우회하며 병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지휘하는 부대에 대해서조차 그런데 미국에 속내를 지나치게 내비친게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24일 러트릭 미 상무부 장관과 관세 협상을 앞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산업부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3/dt/20250813153338910vymn.jpg)
특히 ‘반미(反美)’를 너무 일찍 노골적으로 드러낸 게 아닐까. 중국에 우호적인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은 채 두고 보자는 식이다. 관세협정에 있어 잃을 것이 없다는 태도다. 취임 3개월이 다 되도록 한미 정상이 한 차례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불길한 징조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충분한 대체재 확보가 가능한 미국이 시간을 끌어 이재명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는 건 정해진 시나리오다.
협상단이 앞장 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사기’ 중 ‘자객열전’(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번역본)에 따르면 형가가 다시 노래하니 그 소리가 강개하여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이 관을 찌를 듯 치솟았다. 이렇게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끝까지 (뒤를)돌아보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강한 울림을 남기는 법이다. 협상단의 어깨에 국민의 눈과 기대가 쏠려 있다. 미국에서 사력을 다하는 협상단에 응원을 보낸다.
송신용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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