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착한 치매를 바라는 고단함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5. 7. 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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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외할머니 치매가 딸들에게서 생활을 앗아갔다.

기운이 팔팔한 치매 환자를 요양원은 좋아하지 않는다.

착한 치매 아니면 곤란하다는 언질을 완곡하게, 그러나 확실히 전달받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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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채는 게 요양원인데
치매환자 갈 곳은 없다
간병비 국가 지원 이전에
믿을 만한 시설부터 늘렸으면

아들아. 엄마 얼굴 좀 보렴. 몇 달 만에 반쪽이 됐다. 너의 이모도 그렇다. 외할머니 치매가 딸들에게서 생활을 앗아갔다. 요양병원에서 요양원, 사이사이 대학병원 검진, 요양병원 시절 쉼 없이 울리던 간병인 문자 응대, 요양등급용 서류 작업, 성년후견인 신청을 위한 그 몇 배의 서류 작업….

엄마와 이모의 분투를 보면서 아빠는 네 고모들에게 미안해졌다. 알다시피 너의 친할머니도 마지막 몇 년은 치매를 앓으셨다. 그때 아빠가 한 일은 너를 데리고 면회 가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할머니가 홍삼젤리를 주면 너는 단걸 싫어하면서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누굴 닮아 착한 거지?' 멍청한 소리를 하는 아빠를 보고 고모들은 웃었다. 그때 고모들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을 게다. 지금 네 엄마와 이모처럼.

그래도 고모들은 운이 좋았다. 세상엔 두 가지 치매가 있으니 착한 치매가 있고 덜 착한 치매가 있다. 친할머니는 고령이었고 복합 질환으로 혼자 걸을 수도 없었다. 종일 누워 있는 환자가 치매가 온들 요양병원이 더 신경 쓸 일은 많지 않다. 외할머니는 칠순 즈음 치매가 왔다. 정신을 뺀 대부분의 신체 기능이 정상이다. 기운이 팔팔한 치매 환자를 요양원은 좋아하지 않는다. 쉼 없이 배회하고, 저항하고, 힘이 세서 제어가 되지 않는다. 네 엄마는 요양원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파랗게 질린다. 퇴소하랄까봐.

외할머니가 나흘 만에 쫓겨난 요양원에서 말했다. "할머니가 기운이 세시네요.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 근력을 빼고 오시는 게…." 요양병원에선 치매 환자의 활동성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처방해준다. 약을 먹으면 더 많이 자고 축 처진다. 네가 고민이 얕은 성격인 걸 알지만 (누굴 닮은 것이냐) 한번 생각해보자. 주변이 편해지자고 사람을 재우는 일에 관하여. 대관절 인생은 무엇이고 인간은 왜 사는 것이냐. 아빠는 개똥철학이 안 어울린다고? 이 문제가 철학에서 양심을 더부룩하게 하는 두통으로 전이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현실은 개똥처럼 간단치 않다.

엄마와 이모는 모 기업이 9월에 개소하는 프리미엄 요양원에 대기 신청을 넣었다. 요양등급 환자에게 주어지는 국가보조금을 제하면 월 400만원 실부담. 다행히 할머니는 부담 능력이 있다. 그러나 엄마는 절망하고 있다. 착한 치매 아니면 곤란하다는 언질을 완곡하게, 그러나 확실히 전달받은 모양이다. 프리미엄 요양원은 더 많은 케어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더 큰 비용을 치르고 가는 곳이 아니다. 치매가 있더라도 예후가 고상하면서 돈도 있는 프리미엄 환자가 쾌적한 환경을 바라고 가는 곳이다. 믿을 만한 치매 전문 요양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대기 순번이 1000번을 넘어가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평균수명이 늘수록 인생 종반을 치매와 함께 보낼 확률도 높아진다. 그들을 돌볼 가족은 줄고 있다. 네가 아빠보다 결정적으로 불리한 게 뭔 줄 아느냐. 네게는 형제, 특히 누나가 없다(세상의 모든 딸을 준대도, 인도를 준대도 너와 바꾸지 않겠다. 그래도 네가 영락없이 나처럼 굴 때는 '딸을 낳았어야 했나' 생각한다. 사랑한다 아들).

지금 대통령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듯하다. 간병비를 급여화하고 웬만한 중증이 아니면 집에서 치료받는 '통합 돌봄'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도움이 되겠지만 아빠는 '덜 착한 치매 환자'를 위한 시설 확충이 급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에 뭘 바라고 산 적이 없는데 치매는 개인이 감당하기에 좀 버겁다. 언젠가 너는 말했다. "아빠는 치매 걸리지 마요." 내 말이. 피할 수 없다면 착한 치매였으면 좋겠다. 혼자인 너를 위해. 아빠는 대개는 혼자일 네 세대가 걱정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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