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를 지켜요

탈모에 좋다는 검은콩을 샀다. 얼마 전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는데, 미용사가 빈 곳을 채운다며 흑채를 뿌려주었다. "어머, 감쪽같네요. 정수리가 풍성해 보여요."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지만, 정수리가 비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기 했지만, 흑채로 감출 만큼은 아닌 줄 알았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마가 넓어 보인다는 말에 앞머릴 만들어 이마를 가린 적도 있다. 앞머리가 있으면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으니, 욕심이 났던 것 같다. 그때부터 없는 옆머리와 윗머리를 가져다 지금껏 앞머리를 하고 있다.
갓난아이의 정수리에는 숫구멍이 있다. 갓난아이를 보면 머리의 뼈가 다 형성되지 않아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아이가 숨을 쉴 때면 발딱발딱 따라 뛴다. 숫구멍을 천문(泉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머리의 한가운데에서 있는 천문은 전두골과 두정골 사이에 있는 것으로 천문 중에서 가장 큰 천문이라, 대천문이라 부른다.
천문은 태어나 여섯 달 내에 뼈로 닫힌다고 한다. 뼈로 단단해지기 전까지 갓난아이를 씻기거나 할 때면 말랑한 곳이 다칠세라, 조심스레 다루었다.
천문의 한자를 보면 천(泉)은 여러 뜻을 담고 있다. 샘, 돈, 저승, 물이 솟아 나오는 근원으로 그중에서 저승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가서 산다는 세상을 말한다. 즉, 천문은 영혼의 문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정수리가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정수리가 몇 번이고 뜨거워지는 때가 있었다. 살다 보니 이 꼴 저 꼴 다 보고 산다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세상에 이런 일이'가 튀어나오니 말이다.
속된 말로 '뚜껑 열린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정수리가 자주 뜨거워지다가는 뚜껑 열리듯 다시 천문이 열리는 건 아닌지 하는 기우가 생긴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2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폭우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폭염도 따라온다니 더 기막힌 상황이다. 폭우에 실종된 이들을 찾는다는 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에 눈물지을 틈도 없이, 아버지가 아들을 총기로 살해했다는 뉴스에 정수리가 뜨겁다.
'정수리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까지 흐른다'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한 일은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윗물이자 정수리로 사는 지금, 폭우와 폭염의 원인이 지구온난화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니 부끄러워진다.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이다. 지구가 뜨거워 지면 생태계가 망가지고 인류가 살아가기 어렵다. 온실가스에 들어가는 탄소를 줄이자는 운동도 펼친다. 쓰레기도 줄이고, 전기도 아끼고, 전자영수증으로 발급도 받고, 텀블러도 쓰고, 재사용도 하고 말이다.
정수리가 뜨겁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 되는 요즘 날씨에 탄소를 줄이자는 실천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쓰레기를 배출하는 날이 오면, 한숨까지 푹푹 쉬어진다. 몇 가지 사다 먹은 것이 다인데 쓰레기봉투가 넘쳐날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있다.
그러곤 아이들에게 환경을 살리자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입 시켰다. 윗물 노릇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그 부끄러움이, 죄책감이 어디로 갔겠는가. 탈모가 괜히 오는 게 아니었다.
정수리 풍성할 날, 그날을 위해, 남은 정수리라도 잘 지키고 있어야겠다.
Copyright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