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총기 살인 피의자 “날 따돌렸다”… 방아쇠 당긴 건 ‘소외감’
인천연수경찰서 ‘송도 총기 살인사건’ 조사 결과 브리핑
‘가장으로서 심리적 위축’ 요인
피의자 주장 달리 금전 지원 받아
예행 연습 시도 ‘계획범죄’ 결론
“신고자 진술 토대로 위치 파악
다방면 노력” 늑장 대응 해명도

인천 송도 총기 살인사건 피의자 A(62)씨는 가장으로서 좌절감과 소외감 등을 느끼는 등 심리적으로 위축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이 결론지었다.
■ “나만 외톨이였다” 가장으로서 자존감 떨어져 범행
인천연수경찰서 이헌 형사과장은 29일 오후 인천경찰청에서 기자 브리핑을 열고 “A씨는 25년 전 전 처와 이혼하고, 10년 전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면서 고립감에 사로잡혔다”며 “가장으로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등 심리적으로 위축돼 아들 B(33)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기들끼리 짜고 나를 ‘셋업’(set up·골탕 먹이다)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초기 조사에서 ‘가정 불화’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며, 프로파일링 과정에선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A씨의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이헌 형사과장은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전처 C씨와 이혼한 뒤에도 오랜 기간 한 집에 살면서 자신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고 망상에 가까운 착각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10년 전부터 자신이 가족들과 살던 자택에 홀로 거주하고 아들과 손주 등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에 다른 가족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처 C씨는 A씨와 이혼한 뒤에도 당시 어린 나이였던 아들 B씨를 위해 한 집에 살며 생활을 이어가다 2015년 B씨가 결혼을 하며 출가한 이후 그도 거주지를 옮겼다. 이후 B씨는 명절과 A씨의 생일, 어버이날 등 1년에 4차례 A씨와 만남을 가지며 자녀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2년 전 A씨의 회갑 잔칫날에는 B씨와 A씨의 며느리·손주뿐만 아니라 C씨도 참석했다.
또 가족들은 A씨에게 생활비뿐 아니라 통신비, 아파트 공과금 등 금전적인 지원을 이어왔다. 이들은 A씨가 파이프, 손잡이 등 사제 총기를 제작하기 위한 부품을 구입하기 시작한 지난해 8월 이후에도 비정기적으로 거액을 A씨의 계좌에 이체했다.
경찰은 A씨가 소외감과 좌절감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아들을 살해할 계획을 짜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A씨는 사제 총기를 만드는 영상을 우연히 접한 뒤 총기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총기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총알과 장약을 빼고 이불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등 예행 연습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지난 20일 오후 9시31분께 인천 송도 한 아파트에서 사제 총기로 아들 B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자택인 서울 도봉구 쌍문동 아파트 자택에 시너가 든 페트병 등 인화성 물질 15개와 자동 점화장치를 설치해 폭발시키려고 한 혐의도 받는다. 경찰은 A씨가 며느리와 손주 2명을 향해 장전된 총을 겨누고, 독일인 가정교사를 향해 사제 총기 방아쇠를 당기는 등 현장에 있던 가족·지인을 살해하려 한 것으로 보고 살인미수 혐의도 추가했다.

■ 경찰 늑장 대응, “피의자 위치 파악 위해 노력했다”
112신고가 접수된 지 70여분 뒤에야 경찰특공대가 집 내부에 진입하면서 B씨에 대한 구조가 늦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경찰은 신고자 진술을 토대로 A씨가 집 안에 있다고 판단해 대처했으며, A씨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관할 지구대 경찰은 112 신고가 접수된 지 10분 만인 오후 9시41분께 현장에 도착했으나, A씨가 집 안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경찰특공대가 도착한 오후 10시16분까지 현관 복도에서 기다렸다. 인천 영종도에서 출발한 특공대가 오후 10시43분께 집 안에 진입했지만, A씨는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총상을 입은 B씨는 경찰특공대 투입 직후 이송돼 오후 11시3분께 병원에 도착했으나 끝내 숨졌다.(7월22일자 6면 보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의 며느리가 “A씨가 거실에 있다. 안방으로 이동한 것 같다”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 등을 토대로 A씨가 집 안에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경찰은 테라스를 통해 집 내부 확인을 시도했으나, 거실 커튼 때문에 실패했다.
경찰은 B씨가 이송되고 난 뒤인 오후 11시18분이 되어서야 A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층에 내려 도주한 것을 확인했다. A씨는 범행을 저지른 지 10분 만인 오후 9시41분께 현장에서 달아났다.
배석환 인천경찰청 112종합상황실장은 “관련법에 따라 A씨를 ‘자살우려자’로 판단한 후에 위치 조회를 실시했다”며 “폐쇄회로(CC)TV로 A씨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나,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해 CCTV 영상을 확인하는 데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경찰청에서 사실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지난 26일 송도 총기 살인이 벌어지고 난 뒤 출동한 경찰의 초동 대처 과정에 대한 감찰에 나선다고 밝혔다. A씨의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 등 조사를 마무리한 인천연수경찰서는 30일 A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정선아 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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