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 80% 시대 온다”… 다가오는 커스터디 ‘대전’[심준식이 만난 블록체인 히어로즈]
미국 유학시절 우연히 비트코인 접해
로펌서 블록체인 고객들 만나서 상담
잘나가던 변호사서 가상자산사업자로
리플과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구축도
“기관투자 시대 오면 커스터디 수요 ↑”

[편집자주]‘심준식이 만난 블록체인 히어로즈’는 블록체인 전문 매체 비온미디어의 심준식 대표가 디지털자산 시장의 리더들과 나누는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 미래 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부산이 아시아 디지털자산 허브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모색합니다.
서울대 공대 출신, 국내 최고 로펌 광장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던 변호사가 왜 모든 걸 던지고 부산에서 디지털자산 스타트업을 창업했을까? 비댁스 류홍열 대표의 이야기는 ‘안정 vs 도전’이라는 현대인의 영원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 타고난 도전 DNA
“굳이 변호사를 그만두고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근데 생각해보니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안정적인 걸 오랫동안 참지 못하고, 새로운 걸 도전하고 스스로 뭔가 만들어가는 게 기본 성향인 것 같습니다.”
류 대표의 도전정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굳이 공대를 선택했고, 공대에서 또 완전히 방향을 틀어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거기서 또 틀어서 창업까지 이르렀다.
■2011년 잡지 표지의 비트코인 - 운명적 만남의 시작
류 대표가 블록체인 세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의외로 우연했다. 2011년 미국 유학 시절, 국제 변호사 단체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그 잡지 표지에 비트코인이 나온 것이다.
“제 칼럼을 게재한 잡지 표지에 비트코인이 나왔어요.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저는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유학 다녀와서 클라이언트들을 만났는데, 블록체인 분야의 클라이언트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많았고, 류 대표는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깊이 발을 들이게 됐다. “단순히 거래소만 있는 게 아니라 ‘커스터디’라는 새로운 인프라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해외에서는 이미 커스터디를 가장 유망한 분야로 보고 있었습니다.”
■부산을 본사로 선택한 이유
“처음에는 디지털자산 전문 신탁회사를 하려고 했어요. 자본시장법상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해석으로 잘 풀어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부산이 규제 특례 구역으로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돼 있어서 거기를 통해 한 번 도전해보면 좋겠다는 게 가장 컸죠.”
개인적으로는 부산이 고향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좋은 포인트’가 됐다. 실제로 비댁스는 부산에 본사를 둔 최초의 VASP(가상자산사업자)가 됐다.
창업 결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가족의 지지였다. “가장 큰 힘이 되준 사람은 아내입니다. 아내가 ‘한 번 해 보라’고 용기를 줬습니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취득 성공, 비결은 인력에 자원을 아끼지 않은 것
작년 한 해 동안 신규 VASP 인증을 받은 업체가 단 3곳뿐일 정도로 까다로워진 심사를 통과한 비결을 물었더니 류 대표는 ‘인력’이라고 답했다.
“저희 회사 성장의 핵심 요인은 VASP에서 요구하는, 그리고 커스터디라는 사업을 운영해나가는 데 인력 확보에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겁니다. 컴플라이언스 조직, 기술 조직, 보안 조직을 구성하는 주요 구성원을 업계에서 가장 훌륭한 분들로 모셨습니다.”
특히 규제기관과의 소통 방식도 남달랐다. “보통은 자문을 받는 제3자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서 설명하겠다’는 포인트로 많이 접근해서 설득했습니다.”
■“80% 법인화 시대가 온다” - 2025년 기관투자 시장 전망
2025년 법인계좌 허용으로 열리는 기관투자 시장에 대한 류 대표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해외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리테일 중심이었다가 지금은 거의 80%가 법인 기관투자자, 20%가 개인투자자 점유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바뀔 것 같고, 엄청난 수요가 커스터디에 몰릴 거라고 봅니다.”
■글로벌 전략과 부산 해커톤
비댁스는 이미 리플(XRP)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스테이블코인 유통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나라별로 커스터디를 둘 수는 없고, 거점 지역별로 아시아태평양, 미주, 유럽 이렇게 나누게 될 텐데 그런 거점 지역에서의 중요한 커스터디 기업으로서 기능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 블록체인 인재 확보를 위해 오는 10월 26일 벡스코에서 ‘BDACS 아이디어톤’을 개최한다.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부산시가 후원하는 부산 최초의 해커톤으로, 리플, 아발란체, 폴리매시, 솔라나 등이 후원한다.
■좌우명: 疑行無名 疑事無功 (의행무명 의사무공)
류 대표의 좌우명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의심해서 행동하면 명성을 얻을 수 없고, 의심해서 일을 도모하면 공을 세우지 못한다. 일을 할 때 항상 의심하고 고민하지 말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현실적 조언
“창업을 하고 보니까 직장생활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젊은 분들이 처음부터 창업을 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나오는 게 밑거름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직장생활을 거의 20년 가까이 했던 사람도 나와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닥쳐서 당황하고 괴로워했는데, 아예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창업을 한다면 더 어려울 것”이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전했다.
“비댁스는 설립 당시부터 디지털자산 전문 금융기관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던 기업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비전을 실행해나갈 겁니다.”
서울대 공대에서 빅로펌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쌓아온 류홍열 대표. 하지만 그는 안정된 길을 벗어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길을 택했다. “의심해서 움직이면 공을 얻을 수 없다”는 그의 좌우명처럼, 확신과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그의 도전이 한국의 디지털자산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