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소장 한국문화유산, 디지털 다큐로 첫 공개

곽성일 기자 2025. 7. 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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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맞아 한글 고문헌·외교 문서 등 8편 제작…“유산의 귀환 아닌 공동소유로”
선승혜 원장 “과거와 현재, 세계와 한국을 잇는 공공외교 첫걸음”
케임브리지대 영국 속 한국 문화유산 다큐시리즈_보도자료_사진
"영국 속의 한국, 디지털로 되살리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도서관이 수백 년간 소장해온 한국의 희귀 문화유산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디지털 다큐멘터리 형태로 공개됐다.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선승혜)은 28일, 디지털 공공외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숏폼 다큐멘터리 시리즈 '영국 속 한국 문화유산'을 선보이며 "과거의 유산을 오늘의 기술로 세계와 공유하는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케임브리지대 도서관과의 협업으로 진행됐으며, 한글 방각본 소설부터 조선 개화기의 외교 서한, 근대 한글 인쇄물까지, 총 8편의 영상으로 구성됐다.

가장 주목을 끈 자료는 1902년 조선에 머물렀던 여성 선교사 루시 네빌이 직접 수집해 케임브리지대에 기증한 『정수정전』과 『임장군전』이다.

『정수정전』은 여성 장수가 주체적으로 활약하는 조선의 서사문학으로,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해당 작품을 연구 중인 런던대 이슬비 강사는 "조선 시대 여성의 서사적 능동성은 오늘날의 K-드라마가 보여주는 여성 서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 『임장군전』은 이본(異本)이 수십 종에 달할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유연하며, "관객 반응에 따라 결말을 바꾸는 현대 웹툰·드라마의 서사 구조와 닮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대 조선 주재 영국 총영사였던 윌리엄 조지 애스턴이 기증한 『조웅전』과 직접 필사한 한국어 문법 노트도 영상에 담겼다. 애스턴의 문법 노트는 19세기 후반 영국 내 한국어 연구의 실마리이자, 문화적 존중의 흔적으로 평가된다.

한편, 1884년 김옥균이 영국 외교관 해리 파크스에게 보낸 친필 한글 서한도 영상으로 공개됐다. 김옥균이 "조선의 개혁과 근대화 의지를 담아 보낸 이 편지는 외교사의 중요한 문헌일 뿐 아니라, 한글 문서의 국제적 전파의 시발점 중 하나"라고 주영한국문화원 측은 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의 세계 컬렉션 부장 알레산드로 비앙키, 일본·한국 부서장 지연 우드, 큐레이터 셀리 켄트 등 현지 전문가들의 협력을 통해 성사됐다.

비앙키 박사는 "이 유산들은 단순한 고서가 아니라, 영국과 한국의 관계를 말없이 증언하는 존재들"이라며 "이번 다큐멘터리는 유물 중심의 박물관 전시에서 벗어나, 시대와 국경을 넘는 문화적 대화의 시도"라고 평가했다.

문화원은 이번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옥스퍼드한인회와 함께하는 '나의 새로운 미래' 프로젝트와, 한국 전문가들과의 유튜브 대담 시리즈 '한국 문화, 지금 -수다'도 함께 진행 중이다.

'나의 새로운 미래'는 차세대 한국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한 단어로 정의해 기록하는 디지털 캠페인으로, "개인의 삶과 사회의 기억을 연결하는 공공외교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문화, 지금 -수다'에는 소아스 런던대 그레이스 고 교수(문학), 안데르스 칼손 교수(역사), 최진희 킹스칼리지 교수(영화), 김중현 국립민속국악원장, 건축가 강대화 등이 참여해 문학·예술·건축·음악을 관통하는 한국 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했다.

한때는 "왜 우리 유산이 거기 있나"가 화두였지만, 이제는 "어떻게 세계와 함께 볼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문화유산의 귀환'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재해석과 공동소유'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공개는 접근성은 높이되, 원본은 존중하는 국제 협력 모델로 작동하고 있다.

선승혜 원장은 "이 유산들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있는 한국 미학의 증거"라며 "앞으로도 글로벌 사회와 한국의 문화정체성을 창의적으로 연결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