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독서 노트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5. 7. 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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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새벽 3시에서 아침 6시까지, 사유의 심연을 어슬렁거렸다. 장대비 퍼붓던, 2025년 7월 어느 날의 기록이다.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선 모든 사람,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저처럼 그들도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 언어는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일인칭 시점에서 상상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말합니다. (한강)

-무릇 삶이란 천상천하유아독존, 저마다 존엄하다. 생의 숭고는 절대적인 것! 비교우위 계량화가 허송의 요인이고 높낮이의 분별이 남루의 근거이다.

독일의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는 다큐멘트리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인간이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을 찾아 헤매는 여정과, 이 여정에서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탄식을 카메라에 담는다. 동굴은 생명이 창조되는 공간(자궁)인 동시에 소멸과 죽음(무덤)의 공간이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은 두 동굴 사이에 존재하는 정거장일 뿐이다.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은 동굴 속 벽화를 감상하게 만드는 도구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 거룩한 공간에서 저 너머의 세계를 경험하는 동시에 '황홀'이라는 진실과 마주한다. (…) 문득 나는 이런 동굴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배철현)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는 '거룩'의 의미를 신비, 전율, 매혹으로 가득 찬 반짝임이라고 말한다. 모세의 신발을 벗기는 떨기나무 불꽃처럼.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 재력, 권력, 매력을 가진 자는 함부로 공정을 말하면 안 됩니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집니다. 공평이 양심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킵니다. (…)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만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요? 제가 평생토록 관찰한 자연에서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더군요.(최재천)

-그 사람을 아파하지 않을 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쟈크 데리다의 말이다. 약자의 창가에 회향(回向)의 촛불을 켜지 않은 사회는 고장 난 사회이다.

사람이 울 때, 소리를 삼키고 눈물만 흘리는 억눌린 울음을 읍(泣)이라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슬픔의 형식이 드러나는 울음을 곡(哭)이라 하고, 눈물도 흘리고 소리도 나는 그 중간쯤을 체(涕)라고 한다는데, 이날 나의 마당에서 울고 간 새의 울음은 이런 어지러운 말을 모두 떠나서 몸 전체를 공명통으로 삼아 소리를 토해내는 울림(鳴)이었고, (…) 고려 유민(流民)들의 이 울음은 울림이다. 슬픔이 몸으로 육화되어서 울음이 울림으로 바뀌었다. (김훈)

-오른쪽을 지지한 손가락을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다. 호랑지빠귀가 산속에서 온몸으로 울었다. 몸 둘 곳 없는 고려 유민처럼. 참담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