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해체→재창단… 여전히 불안한 제주 여자축구
[편집자주] 운동부가 사라지고 있다. 학생 수가 줄다 보니 야구부와 축구부는 언감생심이다. 꿈을 키우기 위해 전학하고 멀리 통학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운동부를 책임지는 교육부와 문화체육부는 손발이 맞지 않는다. 올해 여름이 운동을 꿈꾸는 일부 학생들에겐 운동장에서 뛰는 마지막 여름일 수 있다. 그들이 내년 여름에도 운동장에서 꿈을 펼 수 있는 대안을 살펴봤다.

지난 18일 호우특보가 발효된 제주시. 갑작스러운 폭우에도 제주서중 여자축구부 선수들은 훈련을 이어갔다. 미끄러운 잔디 위로 공격수 오하윤양(15)에게 공이 날아오자 다 같이 "마무리!"를 외쳤다. 골키퍼 고하은양(15)이 몸을 던져 공을 막아내자 "나이스키핑" 환호가 터졌다.
제주서중 여자축구부는 창단 2년 만에 눈부신 성과를 냈다. 국가대표 고양과 오양을 배출했다. 초등부 선수로 활동했던 학생이 단 1명뿐이던 신생팀이 지난해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 중등부에서 8강에 오르기도 했다.
창단을 이끈 홍철우 감독(63)의 마음은 급해졌다. 제주서중 여자축구부 1기 선수들이 내년이면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하지만 제주에 고등학교 여자축구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교육청 장학사와 제주축구협회 관계자를 만나 "여자축구부를 만들 고등학교를 찾아 달라"며 설득했다. 그 결과 오는 9월 제주여자상업고에 여자축구부가 생긴다. 하지만 홍 감독의 고민은 여전하다. 제주서중에서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가 육지의 안정된 운동부로 갈지, 제주의 신생 운동부로 진학할지 갈림길에 서 있어서다.

고양은 제주서중 창단 멤버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축구를 포기할 위기에 처했지만 2023년 제주서중 여자축구부가 창단하면서 고향인 제주에서 꿈을 이어갈 기회를 얻었다. 지난 4월 2026 AFC 여자 U-17 아시안컵 대비 U-16 대표팀에 발탁됐다. 이번 대표팀 훈련에 소집된 골키퍼 3명 중 유일한 중학생이다.
공격수 오양 역시 운동부가 인생을 바꾼 사례다. 초등학생 시절 남자아이들과 점심시간마다 공을 차던 그는 홍 감독의 권유로 학생선수 길에 들어섰다. 주특기는 슈팅이다. 창단 첫해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에서 25m 프리킥으로 대회 첫 골을 넣었고, 올해 한국여자축구연맹 U-15 한일교류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경기 전승을 이끌었다.
오양은 "축구부에 들어오기 전까지 꿈이 없었다. 점심시간마다 공을 차면서도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다"며 "지금은 WK리그에서 뛰며 본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두각을 드러냈음에도 제주 여자축구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초·중·고 운동부를 잇는 연계 사다리가 이미 한 차례 끊겼다는 점이다. 2021년 제주여고 여자축구부가 해체된 이후 고등부 공백이 4년간 이어졌다. 오는 9월 제주여자상업고에 새 팀이 생기지만 신생 운동부라는 불안감 때문에 유망주들이 쉽사리 진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학생운동부 연계 육성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잘하는 선수가 모여야 팀이 성장하고 그래야 신입생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홍 감독에 이어 제주서중 감독을 맡고 있는 문수영 감독(29)도 학생선수때 겪었던 일이다. 제주지역에서 초교 여자축구부를 마친 그는 진학을 위해 울산으로 떠나야 했다. 문 감독은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1년에 3번만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고 했다.
홍 감독은 "고향에서 친구들과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운동하는 게 학생선수들이 성적을 내는 데도 큰 힘이 된다"며 "고등학교까지 여자축구부가 활성화돼 제주에서도 지역 대표 선수가 제대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생 운동부일수록 안정적인 선수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 단순 창단 지원금 지급에 그치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 전부터 시행 중인 '학교운동부 창단지원사업'은 창단 후 3년간 총 9000만원을 지원하지만 이후 자립은 학교 몫이다. 과거 제주여고 여자축구부가 한국여자축구연맹에서 3년간 총 9000만원을 지원받았음에도 선수 수급 문제를 넘지 못하고 해체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지역사회, 지역구단, 종목협회가 손을 맞잡고 구축된 연계 사다리를 꾸준히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제주교육청이 다방면으로 계획을 준비 중인 이유다. 구자철 선수가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있는 지역 프로구단 제주SK FC와 지난 2월 체결한 업무협약(MOU)를 통해 훈련 교류를 확대하고 학생선수에게 실질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제주교육청 체육교육 담당 장학사는 "제주SK FC 구단에 요청해 인적 지원을 계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며 "제주대 여자축구 대학팀이나 실업팀을 창단해 고등학교 이후 학생선수 진로까지 연계할 수 있도록 지역축구협회, 지자체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김미루 기자 miroo@mt.co.kr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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