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작가는 노동자" 판례 쌓이는데…'원직 복직' 이번에도 외면?

김예리, 노지민 기자 2025. 7. 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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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비정규직 돌려막기' 방식 반복하면, 어느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가 싸움에 나서겠나"…회사 문제 삼지 않는 노동위 관행 비판도

[미디어오늘 김예리, 노지민 기자]

공영방송 KBS가 방송작가에게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하다 해고하는 것이 부당해고라는 법적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KBS청주방송총국에서 일하던 방송작가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에서도 '부당해고됐으므로 원직 복직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은 가운데, KBS는 그를 기존 직무에 복귀시킬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중앙노동위원회는 KBS청주 방송작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판정서에서 “KBS가 2024년 11월11일 이 사건 근로자에게 한 11월29일자 프로그램 해지 통고는 부당해고”라며 “KBS는 이 사건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시키라고 구제 명령했다. 해고기간 임금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중노위는 지난달 20일 충북지노위의 구제명령을 재확인했고, 한 달 뒤 판정서가 송달됐다.

중노위는 “이 사건 근로자는 방송원고 작성 외에도 이 사건 사용자의 업무상 지휘, 감독 하에 출연자 섭외, 큐시트 작성, 방송 녹음과 편집, 방송장비(AFS) 조작, 상품권 발송, 홈페이지 게시물 작성 및 업로드 등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판단되며 근무시간과 장소가 사용자에 의해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K작가는 지난 2011년 KBS에 입사했다. 판정서에 따르면 그는 입사한 뒤 일주일간 업무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이후 14년 간 라디오 시사·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중 9년 반은 서면 계약없이 일했고, 2020년 12월 처음 KBS청주 요구로 프리랜서 계약서(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썼다. CJB청주방송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14년 일한 고 이재학 PD가 부당해고 문제를 법적으로 다투다 사망한 해였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KBS청주는 '프로그램 폐지'를 이유로 K작가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KBS가 노동위에서 줄곧 K작가가 “프리랜서 방송작가일 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라면서 PD의 지시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사실도 없다고 주장한 것들은 인정되지 않았다. 판정서에는 담당 PD가 K작가에게 섭외, 코너 구성, 구체적인 멘트 순서 등을 업무 전반에 걸쳐 직접 지시한 사례들이 그대로 담겼다.

▲미디어비정규직노동단체 엔딩크레딧은 지난 6월17일 여의도 KBS 본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대표 공영방송사 KBS가 초심 결정에 불복해 시간을 끌고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한다”며 “당장 원직복직시키라”고 요구했다. 이은주 민주노동당 정무실장과 K 작가(오른쪽). K 작가는 흐림처리. 사진=김예리 기자

'유기 협업할 수밖에 없는 방송프로그램 성격상 방송작가가 프리랜서처럼 독단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재확인됐다. 중노위는 “(K작가가) 담당한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충청의 지금' '생생충북'의 성격상 이 사건 근로자가 방송 주제, 출연자 동을 독단적으로 정할 권한이 부여됐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고, 실제 담당 PD가 이 사건 근로자에게 이메일로 방송 내용에 대해 지시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K작가는 이번 판정에 대해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7개월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방송작가가 근로자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이렇게까지 힘겹게 인정돼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며 “이제는 KBS도 이상 더 시간을 끌지 말고 중노위 명령에 따라 원직복직을 즉각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서 2021년 고용노동부는 지상파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결과, KBS가 시사교양·보도국 작가 70명을 '프리랜서'로 위법하게 고용해왔다며 근로계약 시정명령을 했다. 그러나 KBS가 2년 넘게 일한 방송작가들을 행정직으로 배치하면서, 방송작가로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맺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듬해인 2022년 지방노동위에 이어 중앙노동위가 KBS전주 방송작가가 부당해고됐다며 그에 대한 원직 복직을 명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사자인 A작가 설명에 따르면 KBS는 복직 협상 과정에서 FD 업무인 방송지원직과 총무, 수신료, MD 등을 하는 행정지원직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A작가 직무에 '프리랜서 작가'를 새로 고용했다는 이유였다. 정규직 방송제작 노동자에게 호봉제를 적용하는 것과 달리 A작가에 대해선 관리자의 근태 평가에 기반해 임금을 정하는 연봉제를 적용했다. 행정지원직이 된 A작가는 수신료 지역지사에서 정규직 직원들과 한 데 섞여 일하고 있다.

KBS전주 방송작가 부당해고를 비롯해 다수의 미디어 비정규직 사건을 맡아온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 노무사는 “KBS는 전주총국 작가 사례에서도 작가 직종이 정규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직종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왔다”며 “노조가 없는 작가 개인으로선 개별 협상 과정에서 회사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압박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했다.

실질적인 원직 복직을 이행하지 않아도 회사를 문제 삼지 않는 노동위 관행과 관련 규칙의 허술함도 문제로 꼽힌다. 노동위 규칙(79조)은 구제명령 이행 여부를 판단할 때 “같은 직급이나 직무가 없는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유사 직급이나 직무를 부여했는지 여부”를 기준 삼도록 밝히고 있다. 노동위가 이 조항을 적용하면서 회사 쪽 사정을 지나치게 폭넓게 받아들인다는 지적이다.

김유경 노무사는 “노동위 규칙이 세부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회사가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무늬만 프리랜서'처럼 다툼 과정에서 근로자로 인정 받는 사례가 늘어난 만큼 규칙의 보완과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KBS가 '비정규직 돌려막기' 방식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다면, 어느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직 복직조차 어려운 싸움에 나서겠나”라고 비판했다.

KBS는 28일 “재심 판정서를 수령했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KBS가 중노위 판정 수용 여부를 확정해야 하는 기한은 판정문 송달일로부터 2주 뒤인 8월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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