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군사기밀’이라며 재판 제출 거부…감사원은 ‘보도자료’로 공개
‘기밀 누설’ 최재해·유병호 수사 미적…“국방부가 고발해야”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자를 기소할 때 주요 근거가 됐던 감사원 감사 결과와 기록을 변호인 요청에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사기밀이 담겼다’며 감사원이 이를 비밀로 지정했다는 이유를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감사원은 ‘중간 발표’ 형식으로 다수의 군사기밀을 공개해 검찰 수사의 지렛대 구실을 했다는 비판을 샀는데,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된 최재해·유병호 등 수사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 시작과 동시에 국가안보실·국가정보원·감사원·검찰 등이 총동원됐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1심 재판은 3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 핵심 안보라인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2022년 12월)된 이 사건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2년8개월째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공판 과정에서 한미 정보당국이 생산·관리하는 군사기밀인 에스아이(Special Intelligence, 특수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 18일까지 60여차례 공판이 진행되며 증인 50여명이 출석했지만, 알려진 내용은 2022년 10월 감사원 보도자료와 2023년 12월 감사 결과 보도자료 외에는 거의 없는 이유다.
이 사건 피고인을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29일 한겨레에 “검찰은 감사원 자료를 토대로 수사하고 기소하고 공판을 하면서도, ‘감사원이 비밀로 지정했다’며 감사 기록 등을 법정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이 영장도 없이 관련 공무원들을 쥐어짠 감사 기록이 재판에 활용되고 있는데, 변호인은 기껏해야 감사원 보도자료 정도만 보고 방어하는 수준이다. 검찰은 비공개 재판인데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가 검찰에 자료 제출을 검토하라고 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한겨레에 “공소사실 입증을 위해 필요한 증거자료는 모두 제출하고 있다. 비공개 재판이어서 구체적 확인을 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감사원에는 검찰에 어떤 자료를 넘겼는지 물었지만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국방부와 해경 등은 윤석열 정부 출범 한달여 만인 2022년 6월16일, 문재인 정부 때 발표(2020년 9월 ‘고 이대준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를 번복해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감사원은 이튿날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의결도 거치지 않고 감사착수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의혹 해소”를 이유로 들었다. 넉 달 뒤인 2022년 10월13일 실지감사 종료와 동시에 ‘수사요청 보도자료’라는 이례적 형식으로 감사 진행 내용을 그대로 공개했다. 이 역시 감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내용이었다.

A4 18쪽에 이르는 수사요청 보도자료는 △감사 개요 △주요 사건 경과 △국가안보실·국방부·통일부·국정원 등의 초동 대처 과정 △월북 여부 및 시신소각 판단 과정 △해경 수사 및 결과 발표 과정 등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월북 몰이’를 했다며 그 근거로 “구명조끼에 한자가 쓰여 있음”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팔에 붕대가 감겨져 있던 정황” “군 당국에 의해 확인된 배는 중국어선뿐임” 등 내용을 보도자료에 상세히 썼다. 보도자료에 담지 못한 “구체적 내용은 감사 담당자에게 문의하면 직접 응답할 것”이라며 김영신 공직감찰본부장(현 감사위원), 우동호 특별조사국장(현 지방행정감사1국장), 김숙동 특별조사1과장(현 특별조사국장), 한윤철 당시 수석감사관 휴대전화 번호까지 보도자료에 기재했다. 이전에 없던 형식이었다.
이미 국정원과 유족 고발로 검찰이 관련자 압수수색과 조사까지 마친 상황에서 감사원이 생뚱맞은 ‘수사요청’을 한 의도를 두고 검찰의 구속수사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는 의심이 쏟아졌다. 실제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당시 부장 이희동)는 전례 없는 감사 내용 공개 직후, 이를 발판삼아 서훈·서욱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었다.
검찰 기소 1년 뒤인 2023년 12월 감사원은 ‘수사요청 보도자료’와 대동소이한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감사위원회의는 ‘군사·안보상 기밀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감사보고서를 비공개했다. 1년2개월 전 감사위원회의를 ‘패싱’하고 보도자료로 감사 내용을 무더기 공개했을 때와는 완전 다른 판단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정치 공세를 위해 의도적으로 군사기밀인 에스아이(SI) 정보를 공개했다’며 2022년 12월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공수처 수사가 진전이 없자, 지난해 12월 국회는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소추하며 ‘감사 과정에서 알게 된 Ⅰ급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사유를 넣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3월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보도자료 내용이 군사 Ⅰ급 비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했다. 탄핵심판 과정을 잘 아는 인사는 “변론종결 전까지 국방부와 감사원이 헌재의 사실조회에 응하지 않았다. ‘감사원 보도자료 내용이 군사기밀인지 여부를 판단할 자료가 없었다’는 것이지, ‘보도자료 내용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군사기밀 유출 ‘피해자’인 국방부가 이제라도 전향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군 관련 사건 경험이 많은 법조인은 “군사기밀 유출은 입증이 매우 간단한 사안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었더라도 이재명 정부로 바뀐 만큼 국방부가 감사원의 군사기밀 유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관련자들을 직접 검찰에 고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공판에서 국방부와 해경 관계자 등의 증언 내용이 바뀌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사건 변호인은 “월북 여부 판단에 대해서는 해석이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판단을 뒤집는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주도해서 관련 회의를 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입장 변화를 밀어붙인 진술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전날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해경과 국방부가 기존 입장을 변경할 때 김태효 1차장이 한가운데 있었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2022년 5월 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는 국방부 외에 해경까지 참석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민주당이 “김태효 1차장 등 국가안보실의 철저한 기획”이라고 비판하자, 국가안보실은 “안보실이 개입하거나 지침을 주는 일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김태효 전 차장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입장을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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