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중 ‘엡스타인 의혹’ 해명한 트럼프… “내 직원 빼앗아 가 제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에 대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순방 중 영국 총리가 함께 앉은 자리에서 기자에게 20년 넘게 묻어뒀던 엡스타인과 관계를 끊은 이유를 상세히 공개했다. 미국도 아닌 해외 순방지에서, 해외 정상을 동반한 양자 회담이라는 공식 석상에서 나온 이례적인 답변이었다고 미국 매체들은 평가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과 달리 매우 구체적으로 엡스타인 의혹을 해명했다. 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나체 여성 그림 편지’ 의혹부터 반박했다. 이 의혹은 트럼프가 2003년 엡스타인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성 나체를 그린 그림과 서명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으로, 두 사람이 친했다는 사실을 판가름하는 증거였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가끔 자선 단체를 위해 네 줄의 선과 작은 지붕을 그려주긴 하지만, 나는 여성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나는 유럽연합과 맺은 역사상 가장 큰 무역협상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 ABC 방송은 “WSJ 보도 이후 트럼프가 보인 가장 길고 감정적인 반응”이라고 전했다.

트럼프는 엡스타인과 사이가 틀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처음 구체적인 설명을 내놨다. 그는 “엡스타인이 부적절한 짓을 했다. 그는 내 직원을 훔쳤다(He stole people that work for me)”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그 짓을 반복해 마러라고 클럽에서 내쫓았다”고 덧붙였다. ’2007년 엡스타인이 저지른 성범죄가 불거진 후 출입을 막았다’는 기존 입장보다 훨씬 구체적인 해명이었다.
미국 매체들은 트럼프가 언급한 ‘직원 훔치기’가 엡스타인 피해자 버지니아 주프레 증언과 관련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주프레는 과거 마러라고 리조트 직원으로 일하던 중 엡스타인 공범 길레인 맥스웰에게 포섭돼 성 착취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표면적으로 엡스타인 의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적인 사업 분쟁으로 관계가 틀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며 “실제로는 엡스타인이 마러라고 리조트를 범죄 대상을 물색하고 포섭하는 장소로 활용한 점을 뒤늦게 알고 조치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해명”이라고 평했다.
트럼프는 엡스타인이 소유한 ‘소아성애 섬’이라 알려진 카리브해 개인 섬 방문 의혹에 대해서도 “초대를 거절했으며 한 번도 간 적 없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필사적으로 방어에 나선 배경에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앞서 팸 본디 미국 법무장관은 트럼프에게 ‘엡스타인 파일에 대통령 이름이 여러 차례 나온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범죄 행위에 연루됐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트럼프와 엡스타인 모두 뉴욕에서 활동한 사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둘 사이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는 과거 엡스타인 리스트 등재 사실 자체를 부인해왔던 터라 논란이 커졌다. 여기에 CNN, WSJ 등 여러 매체가 트럼프 두 번째 결혼식에 엡스타인이 하객으로 참석한 사진, 트럼프가 엡스타인에게 보낸 선물 사진을 공개하면서 두 사람 과거 친분을 보여주는 정황이 줄지어 드러났다.
탄탄했던 핵심 지지층 ‘매가(MAGA)’ 가운데 일부는 트럼프가 엡스타인 파일 공개 약속을 어겼다며 충성 상징에 해당하는 빨간 MAGA 모자를 불태우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공화당 소속 극우성향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까지 최근 관련 파일 공개를 요구하는 등 내부 분열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워싱턴에서 곪아 터진 문제가 스코틀랜드까지 따라와 트럼프 발목을 잡을 만큼 국정 동력을 뒤흔드는 최대 악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사회가 이토록 엡스타인 스캔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단순 성범죄를 넘어 ‘가진 자들이 보이는 위선과 특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분노 때문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억만장자인 엡스타인은 수십 명에 달하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조직적인 성 착취를 저질렀지만 , 2008년 첫 기소 당시에는 13개월 징역형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부자와 권력자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대중 분노를 자극했다.
이후 미국에선 그의 사후에도 범죄 조력자들을 끝까지 단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게 불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이나 탄핵 정국이 복잡한 정치 공방이었다면, 미성년자 성 착취는 지지층마저 용납하기 힘든 도덕성의 영역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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