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주의 지배하는 트럼프 시대… ‘동맹의 비용’ 확 늘었다[Deep Read]
관세 협상 압박받고, 동맹 리스크 증가… 강대국 정치 재림 시기의 생존책 추구 절실
李정부에 대한 미국의 우려·불신 일소 시급… 韓, 美와 함께 간다는 확신부터 심어줘야


한·미 관계는 괜찮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25% 상호관세의 유예 시한(8월 1일)이 코앞으로 닥쳤는데 이재명 대통령 정부는 아직 협상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동맹의 혜택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이 대통령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불신을 해소해 나가는 한편으로, 점차 커지는 동맹의 비용과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과제 앞에 섰다.
◇초조해진 관세 협상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을 만나기 위해 25일 워싱턴DC로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렸다. 두 재무장관의 만남은 상호관세 부과 하루 전인 31일(현지시간)에야 열리게 됐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마코 루비오 미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만나지도 못하고 귀국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던 계획은 이미 꼬였고, 정상회담의 날짜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만족할 만한 협상안을 들고 와서 성공적 협상이라고 팡파르를 울릴 정도가 돼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는 한국을 계속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동맹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관세 협상이, 안보 측면에서는 국방예산 및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현안들이 쟁점으로 부상 중이다.
관세 협상의 경우 한국보다 앞서 일본이 타결함으로써 한국은 최소한 일본보다 불리하지 않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일본은 25%였던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대신 자동차와 트럭, 쌀 및 특정 농산물, 기타 품목을 포함한 교역을 개방하기로 했다. 또한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해 미·일이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한국의 입장에서 특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25%를 절반인 12.5%로 하향 조정하고, 5500억 달러짜리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4000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의 비용
미국은 안보 분야에서 한국 국방비를 나토 회원국들에 요구한 것과 비슷하게 국내총생산(GDP) 5%를 지출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한국의 국방예산은 GDP 대비 2.3% 수준인 61조2469억 원이다. 이를 GDP 대비 5%(약 132조 원) 기준에 맞추려면 국방예산을 70조 원 이상 증액해야 한다.
한국에 더욱 어려운 과제는 주한미군의 현대화 논란이다. 미 국무부는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동맹의 현대화’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반도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 핵심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다. 동맹의 현대화란 결국 지금까지 대북 억제용이던 주한미군을 동북아 전체 및 중국용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골자다.
실상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 변화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예고됐었다. 주한미군 4500명의 해외 이전 배치, 한국은 일·중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이라는 시각, 그리고 한반도와 동·남중국해 등을 하나의 전구로 통합해 대응하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 등은 대북 견제가 목적인 주한미군의 성격이 대중 견제 쪽으로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일본·호주·필리핀에 중국의 대만 침공 때 미국 측에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
한미동맹은 변화한 미국과 국제질서 속에서 동맹의 의미와 역할을 재발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이 앞으로 당면할 대외 환경의 핵심은 미국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고, 국제질서도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적 질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냉혹한 현실주의
20세기 들어 미국은 우리에게 익숙한 ‘규칙기반의 국제질서’ 혹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자비로운 패권국’으로서의 역할 정체성을 구축했다. 하지만 오늘날 탈단극 시대를 맞아 미국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비자유주의적·강압적 패권국으로 역할 개념을 전환하는 길목에 들어섰으며, 이 과정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와 그를 뒷받침하는 마가(MAGA) 운동세력이다.
미국의 정체성 변화는 곧 국제질서의 퇴행으로 연결된다.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퇴행은 다극화 질서, 얄타 2.0 시대 혹은 강대국 세력권 정치의 부활을 예고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세계가 구가해온 경제적 번영과 자유로운 통상 환경도 트럼프의 전방위적 관세전쟁으로 변곡점에 도달했다. 이제 국제적 규범이나 룰보다는 ‘돈과 힘’이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주의 강대국 정치의 시대가 재림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일각에서 다극화 질서의 도래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미국이 세계 유일의 ‘하이퍼파워’라는 점이다. 미국은 세계 국방비의 40%를 지출하며, 해외 50개국에 128개의 군사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지배적인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력도 건재하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의 여러 이완 징후를 잘 파악하고 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진화시켜 잘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와 함께 동맹이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동맹의 비용과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현실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미국 조야의 우려와 불신을 일소하고 한국이 여전히 미국과 함께 갈 것이라는 확신부터 심어줘야 한다.
◇생존과 번영의 길
규칙기반의 국제질서 대신 강대국 정치가 재림하는 시대에 협상 카드가 없는 나라는 언제든지 굴욕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중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을 추구할 것인가.
첫째, 자강력 강화다. 최근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확산과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자강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정치든 경제든 자신을 지킬 실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연대 심화와 확대다. 한국이 연대할 첫 대상은 여전히 미국이지만 동맹만으로는 안 된다.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중시하는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으로 붕괴돼가는 규칙기반 국제질서 복원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셋째, 포용을 통한 외교 지평의 확대다. 우리와 체제와 가치가 다른 국가들, 특히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한국 외교의 외연 확대가 필요하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용어설명
‘상호관세’란 교역 상대국이 자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관세. 반면 특정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수입품에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보편관세라 함.
‘원 시어터’란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구로 통합해야 한다는 일본 측 주장.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역내 유사시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참전 요청이 제기될 수 있어.
■ 세줄요약
초조해진 관세 협상: 한미동맹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여러 중요한 도전에 직면. 트럼프가 제시한 상호관세 유예시한이 코앞으로 닥쳤지만 이재명 정부는 아직 협상 실마리를 찾지 못해.
동맹의 비용: 한국이 일방적으로 동맹의 혜택을 받던 시대는 끝나. 동맹의 비용과 리스크가 크게 증가함. 한국은 변화한 미국과 냉혹한 현실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동맹의 의미와 역할을 재발견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
생존과 번영의 길: 한국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불신을 일소하고 한국이 여전히 미국과 함께 갈 것이라는 확신부터 심어줘야. 또한 강대국 정치 재림 시기에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지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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